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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레이스,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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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지난달 13일 강원도 태백시 태백레이싱파크 경주장. 특별한 관계인 두 선수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용희(42)씨와 아들 종원(12·서울 용원초6)이다. 이들은 꼬마 포뮬러라 불리는 카트 레이스에서 눈길을 끄는 부자(父子) 카트 레이서다. 카트는 100∼150㏄ 엔진을 달고 최고 시속 150㎞를 낼 수 있는 1인승 경주차다.

박씨는 연매출 50억원 규모의 자동차 휠 전문업체인 인치바이인치 대표다. 그는 “아들이 조기 유학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아들이 좋아하는 카트 레이스에 함께 출전하게 됐다”고 말한다.

박씨 부자가 카트 레이스에 심취한 것은 4년 전이다. 평소 내성적인 종원이에게 무언가 돌파구를 열어주고 싶어 무작정 서울 잠실에 있는 탄천 카트 경기장을 찾았다. 엄격한 룰과 자신과의 싸움이 특기인 레이스를 통해 아들이 보다 진취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TV 모니터에서 자동차 운전 게임을 즐기던 종원은 카트 운전대를 잡자마자 바로 몰입해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태권도나 테니스장을 주로 다녔지만 종원이는 레이서로 자질을 보였다.

이후 아들의 성격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수줍음을 많이 탔던 아이가 자신있게 의견을 발표하고 골목대장 노릇도 하는 것이 아닌가.

박 사장은 “성격이 바뀐것 뿐 아니라 학업성적도 상위권으로 올랐다”며 “아무리 카트를 태워달라고 해도 공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경기장에 데려가지 않은 게 효과적이었다”고 말한다.

아들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박 사장은 올해 6월 새로운 결심을 했다. 아들과 대화를 위해 함께 카트를 타기로 한 것이다. 종원이에게 카트 조작을 배우면서 핀잔도 들었지만 부자의 정(情)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경기장에서 그는 “요즘 아이 하나인 가정이 대세잖아요. 버릇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아들을 보고 고민이 많았는데 카트 덕분에 성격과 성적 모두 남부럽지 않게 됐습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종원이는 “친구들이 아빠와 함께 레이스를 한다고 하니 무척 부러워해요”라고 답했다.

박 사장은 사업이 성공하면 국내 최고 시설을 갖춘 카트 경기장을 짓는 게 꿈이다. 이날 카트 부자는 태백 레이싱파크 2.5km를 도는 차량별 경주에서 각각 13위,45위를 기록했지만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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