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민족…바다서 답을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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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척박한 영토 대신 바다를 개척한 해양민족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미망인 재클린의 재혼 파트너였던'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를 꼭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고대 신화는 그리스와 바다의 인연을 그리고 있다. 아티카 반도에서 지중해로 뻗어나가는 관문 아테네를 놓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싸웠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땅에 찍어 샘물을 솟게 했고, 아테나는 올리브를 심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걸 주었으니 아테네를 소유할 권리는 자기에게 있다고 서로 우겼다.

신들의 투표에서 아테나가 이겨 아테네의 주인이 됐다. 포세이돈은 격노하며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포세이돈이 남긴 샘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용솟음쳤고, 아테네인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바다에서 답을 구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전쟁 때도 아테네는 육지에서 모든 걸 잃었지만 바다에서 살아남아 역전에 성공했다. 아테네가 주도하는 그리스 함대는 미칼레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지중해를 제패한다.

▶ 그리스 아테네 해양경비대가 19일(현지시간) 퀸 메리 2호 앞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아테네=최승식 기자

'퀸 메리 2'와 7척의 크루즈선도 바다에서 찾은 올림픽 해법이었다. 테러 위협과 부족한 숙박시설을 극복하기 위해 또 한번 바다를 멋지게 이용한 것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날 무렵 "아테네가 올림픽 개최권을 박탈당해 서울이나 시드니에서 다시 열릴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아테네시는 교통.통신.숙박 세 부문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각국에서 수많은 선수.관계자.관광객이 밀어닥칠 올림픽이지만 특히 숙박 문제는 좀체 해결하지 못할 난제였다. '개최권 박탈'의 위협은 올 초까지 계속됐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과 자크 로게 현 위원장은 나중에 "조금만 더 늦었다면 개최권이 이미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렀던 도시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건설비가 들지 않는 호화 유람선을 정박시켜 숙소 문제를 해결한 임기응변은 어쩌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북한 응원단과 선수단은 다대포항에 정박한 '만경봉 92호'를 숙소로 사용했다.

아테네=허진석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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