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비평] 스타 연기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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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스타에 관한 형이상학은 이제 지겹다. 메이어홀드 시스템 따위는 잠시 접어두자. 연극 무대가 아닌 다음에야 카메라 앞에서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는 둘러댈 대안이 못된다. 대다수 관객이 스크린을 보며 요구하는 건 춘향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춘향이가 되는 것이다.

신들린 몰입? 아니다. 그건 이류배우의, 제 멋에 겨운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 관객의 기대는 요컨대 배우들이 극중의 인생을 그저 사는 것이다.

시스템? 춘향이들의 확보과정? 영상제도와 연예인 소비풍조? 물론 스타 '산업' 에서 체계와 토양의 문제를 제쳐놓을 순 없다. 그럼에도 연기 자체는 산업의 측면과 다소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난 솔직히 저 어수룩한 연기의 문제를 구조적 배경 운운하며 시스템과 결부시키는 희석식 처방전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스타들이 시스템에 얽매인 게 아니라 시스템이 스타들에게 매여있는 시대인 것이다.

흥행의 보증수표로 통하는 몇몇 배우들에게 국한된 얘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바로 보자. 사실 우리 영화의 카메라를 장악한 이들은 그런 몇몇 배우들이다.

미시적이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시각 체험의 한계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중요한 진실은 연기자들이 몸값을 해야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비난하는게 아니라 책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영화의 기획에서 구매까지 전단계를 선도하는 자는 바로 그 스타들이다. 그들의 허락없이 찍히는 영화는 얼마나 드문가. 그런데도 우리 은막의 스타들이 저토록 정체돼있고 심지어 '판을 깨는' 연기로 일관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스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정재는 '이재수의 난' 에서 자신의 몸에 붙은 도회적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발밑의 돌부리에 흔들리며 산자락을 뛰어 내려갈 때도 그는 영락없는 도시인이다.

'링' 에서 신은경의 기계적인 심리묘사는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접속' 의 한석규와 '쉬리' 의 한석규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리듬.감정.대사와 호흡에서 그는 거의 하나의 캐릭터 같았다. 연기 변신이란 게 정녕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래도 이들이 발성조차 안 되는 다른 스타들보단 낫다는 말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최근 난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 을 그저 그렇게 봤다. 청춘의 리얼한 절망은 좋았지만 사랑의 파고에 휩싸이는 안이한 결말부분과 한 친구의 죽음, 다른 이의 재생이 도식적으로 겹치는 구도는 진부해 보였다.

그래도 이자와 마리의 빛나는 연기는 참 부러웠다. 얼굴의 잡티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그들의 삶엔 갓 씻어 신선한 얼굴 같은, 자연광? 공기? 그런 것이 숨쉬고 있었다.

지혜롭게도 이 귀여운 프레임의 여신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세속의 범박한 일상을 자기 몸안에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의 위대함을, 그것이 배우가 관객의 마음 속에 신화로 반짝이며 남는 길임을, 이런 연기자를 우린 만나고 싶은 것이다.

김정룡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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