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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조국애 가득한 英 현충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레저행렬로 북새통을 이룬 현충일 교통뉴스를 보자니 몇년 전 런던 워털루 역에서 맞은 영국 현충일의 묵념시간이 떠오른다.

영국 현충일은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 독일이 항복한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자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가 갑자기 중단됐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멈췄으며 때이른 크리스마스 트리의 점멸등도 꺼졌다.

나중에 TV에서 보니 일본 도요타 (豊田) 자동차의 스원든공장도 작업라인을 세웠고, 국회의원들은 전원 의사당에 모여 고개를 숙였다.

워털루역 입구 벽에는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역무원 출신 전몰장병의 명단이 빼곡이 적혀 있다.

역 근무자 전원이 그 앞에 모여 묵념을 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국에는 '전사자 현지매장' 전통 때문에 국립묘지가 없다.

하지만 직장.학교는 물론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공원이나 거리에 이런 추모물을 마련해 놓고 희생자를 기린다.

영국의 추모행사는 두달 이상 계속된다.

9월 초부터 사람들은 둥글고 빨간 추모꽃을 가슴에 단다.

1차 세계대전 격전장인 벨기에 전선의 참호 주변에 많이 피었던 들꽃 '파피'

.이 꽃이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물이 된 것이다.

92년 가을 방한한 찰스 왕세자의 가슴에 달렸던 빨간 꽃이 바로 파피다.

이 시기 영국의 선술집.식당에는 파피 조화를 들고 돌아다니는 자원봉사자들이 흔히 목격된다.

손님들은 이들의 성금함에 내고 싶은 만큼의 돈을 넣고 꽃을 집어간다.

행사 주관자인 영국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지난해 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3천만송이의 파피를 나눠줬다.

전체 인구는 5천7백60만명. 절반 이상이 파피를 손에 쥔 셈이다.

수입금 1천7백만파운드 (약 3백50억원) 는 퇴역군인.유가족 돕기에 사용된다.

미국의 현충일은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지역별로 재향군인들이 벌이는 퍼레이드와 바자에는 남녀노소가 구름같이 몰려나온다.

마치 마을축제를 방불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 등지의 벽이나 기념탑을 찾아 그 마을 출신 전몰장병들의 이름과 업적을 일일이 읽어보며 '가신 님' 을 기린다.

두 나라 국민들이 마음에서 우러나 기리는 현충일. 그 의미를 다같이 되새겨 봤으면 싶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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