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인터넷게임방 다니는 오종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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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세대간의 벽을 구축하는 '주범' 을 꼽으라면 단연 인터넷과 컴퓨터다. 그런 만큼 아버지와 아들이 인터넷 게임방을 함께 찾는 풍경은 그리 흔치 않다.

중소 패션디자인업체를 운영하는 오종원 (44) 씨는 컴퓨터를 모르고서는 자녀와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판단, 92년께 학원을 다니며 컴퓨터를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게임만은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띈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아이 사랑이 지극한 오씨는 아내의 눈총을 피해가면서 아이들과 밤을 새우며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게임을 할 때는 아빠가 아니라 친구나 경쟁자로 생각돼요. 아빠이기 때문에 양보해주는 일은 없어요. 처음에는 아빠와 게임에서 번번이 졌지만, 이제는 저도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 오씨의 큰 아들 별 (남강고1) 군은 "게임은 아버지와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수단" 이라고 강조한다.

둘째 아들 하늘 (신관중2) 군도 "컴퓨터 게임을 잘 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아버지의 '자식사랑' 이 너무 고맙다고 아이들은 입을 모은다.

오씨가 인터넷 게임방을 처음 이용한 것은 2년 전. 그 후로 두 아들과 줄기차게 드나든 끝에 오씨는 최근 국산 온라인게임 '어둠의 전설' 에서 최고 실력자로 '등극' 했다.

오씨는 온라인 게임 공간에서는 아이들의 훌륭한 협력자가 된다. 게임을 즐기는 동안이나 게임방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몹시 소중하게 여기는 오씨는 게임을 통해 협력정신.승부근성 등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지난 일요일 오후에도 두 아들과 함께 게임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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