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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를 찾아서] 8. 세션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피천득의 '플루트 플레이어' 는 지휘자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연주자들을 격려한다. "자기가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서운할 것 없다. (중략) 무음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그 말은 맞다.

가요 라이브에서 세션맨 (연주자) 들은 무대의 대들보처럼 중요한 존재다.

음악적으로 가수의 노래를 받쳐주는 라이브의 '뼈대' 며, 음악 외적으로도 필수적 요소가 된다.

가수 뒤에 서있다는 것만으로 무대가 살아 꿈틀거리게 하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노래의 흥을 돋우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수가 신인일수록 세션맨은 중견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세션맨들은 가요계에서 음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집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주 테크니션은 기본. 요즘엔 그것을 넘어 쇼맨십까지 연출하는 엔터테이너 세션맨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환영받는다) . 원래 세션맨의 동선은 가수가 선 위치 뒤쪽으로 제한돼 왔다.

그러나 요즘 가수들은 세션맨에게 한두 곡 정도는 자리를 양보한다. 이를 십분 활용,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휘젓고 다니는 이들이 엔터테이너 세션맨들이다. 이들은 화끈한 자기연출로 가수 못지 않은 인기를 모은다.

강렬한 드러밍으로 인기 높은 신석철, 무대 막판에 전위예술 하듯이 전면에 나서는 베이시스트 최원혁, 이국적이면서도 자연스런 무대매너가 돋보이는 기타리스트 이준희.박청기, 분위기가 썰렁해질 때 '텔레토비' 소리를 내 뒤집곤 하는 건반주자 박용준 (지금은 해산한 인기듀오 '더 클래식' 멤버) 등이 그들.

물론 이미지 연출보다는 연주 자체에 무게가 실린 테크니션들도 여전히 많다. 우선 기타에선 블루스와 펑키 음악에서 독보적인 실력파 한상원, 포크와 발라드에서 세션을 도맡는 함춘호 등이 꼽힌다.

베이스에는 세션은 물론 작곡.프로듀싱까지 전천후로 활약하는 조동익을 필두로 송홍섭.신현권.이태윤.김병찬 등이 첫 손에 든다.

드럼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 배수연, '시나위' 출신 김민기 등이 있고 건반에는 정원영.한충완.김광민 등 미국 버클리대 출신 퓨전재즈파와 김형석같은 클래식 계열 연주자가 인정받는다.

포크가수 공연에 자주 나오는 박인영은 건반과 함께 바이올린도 연주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이런 테크니션들도 알게 모르게 자기만의 표현을 통해 무대의 흥을 돋우기는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한상원은 진지하게 연주하다가도 1천가지가 넘는다는 오묘한 표정변화로 청중을 즐겁게 한다.

세션맨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약한 저변. 대략 30명이 음반녹음과 공연연주를 독점한다. 악기마다 잘 팔리는 세션맨은 5~10명선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연마다 '그 얼굴이 그 얼굴' 현상이 흔하다.

청중들 입장에선 식상하고 가수나 공연기획자는 세션맨 개런티가 비싸다고 한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급 세션맨이 지방에서 한번 무대에 설 때 개런티는 최고 2백만원, 서울은 3회 이상 공연의 경우 회당 50만원을 받아 웬만한 공연은 2백만원을 넘게 받는다.

그러나 이는 잘 팔리는 세션맨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대부분은 출연기회가 적어 어려운 생활을 한다.

기계적으로 연주만 하는 로봇형 세션맨은 라이브에선 퇴출감이다. 아무리 묵묵히 연주하고 있어도 그의 육체는 청중에게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육체에 이미지를 덧입혀 가수의 노래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세션맨의 의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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