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지도] 7. 노동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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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2세의 젊은 노동자 전태일 (全泰壹) .그리고 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全씨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고 외치며 근로기준법 책자를 가슴에 품은 채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랐다.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은 우리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고 양식있는 지식인과 일반인들이 처음으로 노동운동에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도시산업선교회가 노동자의 권리 의식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기가 이 무렵. 당시의 폭압적 상황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은 종교라는 보호망을 가진 단체들이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박진석 (44) 목사는 "그 당시 선교에 앞서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며 "이를 위해 노동권과 노조결성 등을 교육했다" 고 술회했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 YH노조 사건이 정권의 종말을 재촉했을 정도로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 같은 비중이 있었다.

80년대초 전두환 정권의 등장과 함께 노동운동은 다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 은 이런 분위기 속에 탄생했다.

그러나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상황은 급변한다. 노조 수는 87년 6월말 2천7백여개에서 그해 말 4천1백여개로 급격히 늘어났다.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지역별로 노동상담소를 세워 노동자들을 지원했다.

90년대 들어 노동관련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노동운동가.교수.변호사.의사 등이 참여, 노조활동의 이론과 법률적 문제 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옮겨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등이 그 예다.

이 과정에서 90년초부터 활동한 재야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노협)가 95년 11월 민주노총으로 출범, 61년 발족한 한국노총과 함께 양대 노총시대의 문을 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이들을 위한 단체들이 생겨난 것도 90년대의 특징이다. 95년 발족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에는 현재 21개 지역단체들이 가입,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단체들의 21세기 지향점에 대해 "백화점식 사업에서 벗어나 분야별로 특화하면서 노동환경의 변화에 맞춘 전문화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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