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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택경매에 나타난 서민경제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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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인천지방법원의 부동산 경매 건수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많다는 소식이다. 외환위기 당시 한달에 1300건 정도 처리되던 부동산 경매가 올 들어 1700건으로 늘었다. 지난달까지 이미 1만2116건의 부동산 경매를 처리했는데, 아직도 2만400여건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문제는 경매 대상이 대부분 인천.부천 지역 서민들이 거주하는 다세대.연립주택이라는 점이다. 썰렁하게 얼어붙은 경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 은행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한 서민들의 집이 대거 경매에 넘어가고 있다.

부동산이 법원 경매에서 팔리는 가격은 시가(時價)보다 낮게 마련이다. 경매 대금으로 은행 대출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천지법의 경우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도 많다고 한다. 경기 침체로 길거리에 나앉게 될 처지인 서민이 크게 늘고 있다. 택시 기사.분식집 주인 등 이웃들이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견디다 못해 빚으로 살다가 급기야 집까지 잃고 있는 상황이다.

서민의 고통은 인천.부천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엔 전주 지역에서 상가를 무료로 임대해 주겠다는 곳이 있었다. 불경기로 문닫는 점포가 늘자 건물 주인이 관리비라도 건지기 위해 상가 임대료는 받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서민의 고통이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말로만 민생경제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가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풀겠다며 지난달 초 내놓았던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달 건설업에서만 8만여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또 엊그제 기업인들이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경제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각종 규제를 폐지해줄 것을 건의했지만, 여당 지도부는 참여정부의 철학과 시장개혁의 중요성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더구나 요즘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과거사 문제에만 쏠려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미적거리며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정치권이 과거사에 매달려 있는 동안 서민은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