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났네, 양궁장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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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표적지 위 깃발과 주위의 다른 깃발이 서로 방향이 달라요. 바람이 세지 않아 내심 한숨 돌렸는데 헷갈리네요."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 서오석 감독은 19일 새벽(한국시간) 여자 개인전에서 한국의 금.은메달이 확정된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사대에 섰을 때 관중석에서 "이번엔 우조준!"이라고 소리치며 바람 방향에 따라 작전을 내렸다. 그러나 수시로 바뀌는 풍향 때문에 "좋았어"라고 외쳤다가도 마지막 순간 화살이 엉뚱한 데 꽂히기도 했다.

양궁 경기장인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는 '4색 바람'이 분다.

선수들은 대개 표적지 위 빨간색 삼각 깃발을 보고 바람결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것만 믿었다간 낭패를 본다. 여자 개인 결승전 때도 표적지 위 삼각 깃발은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북풍이었다.

그러나 표적지 10m 앞 좌우에 세워진 풍향기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부근엔 바람이 없다는 얘기였다.

한데 표적지 뒤 큰길 쪽에 세워진 올림픽 깃발은 거꾸로 북쪽으로 휘날렸다. 또 옆으로 5m쯤 떨어진 곳의 깃대는 정반대인 남쪽으로 깃발을 펄럭였다. 그리고 사대에서는 표적지 쪽으로 동풍이 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바람. 서 감독은 에이스 윤미진의 부진도 이 때문으로 봤다.

원인은 특이한 경기장 모양과 날씨 때문이다. 말굽처럼 생긴 스타디움은 대리석 스탠드 상단에서 40m 넘게 아래로 움푹 꺼져 있다. 여기에 뜨거운 날씨로 스탠드가 달궈져 상승 기류가 생기면서 풍향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양궁의 자존심 한국이 앞으로 남은 남녀 단체전에서 꼭 극복해야 할 숙제다.

아테네 =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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