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메이커의 편지] 책 골라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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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가끔 유아나 초등학생을 둔 친구들 집에 갔다가 씁쓸한 기분이 되곤 한다.

친구들은 이미 세계명작동화니 위인전기니 과학동화니 전집들을 몇 질씩 갖춰놓고도 부족해서 안달하며, 소위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는 내게 묻는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 '어떤 책을 골라주어야 할지. ' 그래서 고민 고민해 꼭 권하고 싶은 그림책을 꼽으면 고개부터 내젓는다.

'우리 아인 한글 뗀 지가 오래돼서' 혹은 '너무 영특해서 그림책을 볼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는 것이다.

어떤 책인지 살펴볼 생각도 않고, 그림책이라서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이를 최고로 키우고 싶어 하는 한결같은 부모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왕성한 식욕을 가진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골고루 나눠 주어 쑥쑥 자라게 해 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편식을 강요하는 듯해 안타깝다.

정작 책을 읽는 아이는 무시당한 채, 부모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아이들 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음껏 머릿속에 그려보며, 아이들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상상의 세계보다는 아이들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따분한 지식만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책을 읽어라, 이 책을 읽고는 이런 감동을 가져야 한다며 욕심 많은 부모 속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갖가지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내 아이가 좀더 큰 세계에서 신나게 뛰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내 아이를 믿어 보자.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철학이 있고, 각자 자기 방식의 소화능력이 있다.

맹인 지팡이 잡아주듯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는 뒤에서 지켜보며 아이가 뒤돌아볼 때마다 늘 적당한 거리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좀더 너그럽고 여유있는 자식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광자 시공사 아동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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