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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 김일성 만나다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과의 끊임없는 만남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어떤 만남은 한 개인을 도약과 행운의 길로 이끌어 주기도 하지만 어떤 만남은 고난과 역경의 단초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제껏 살아 온 80년 가까운 인생도 크게 예외는 아닌듯 싶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남과 희비 (喜悲) 로 가득 채워진, 바로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그 숱한 만남 중에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건 역시 북한 김일성 (金日成) 주석과의 만남일 것이다.

지금은 고인 (故人) 이 된 金 주석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인 1990년 10월18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그해 9월에 있었던 역사적인 제1차 남북 고위급 회담 (서울)에 이어 평양에서 제2차 고위급 회담을 가질 때였다.

분단이후 거의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한 총리급 대화는 그 결실이야 어찌됐든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만큼 국내의 모든 언론들은 고위급 회담을 연일 대서특필했고 국민들 역시 전례없이 고무된 분위기였다.

金 주석을 처음 만난 것은 회담 마지막 날인 18일 오후 3시 평양 외곽 대성구역 (區域)에 자리잡은 금수산 주석궁에서였다.

안내는 당시 나의 카운터파트였던 연형묵 (延亨默) 총리가 맡았다.

주석궁은 4층 높이의 유럽식 석조 건물로 '과연 북한권력의 심장부답구나' 할 정도로 조형미를 갖춘 웅장한 모습이었다.

처음 안내된 곳은 밝은 크림색 천장에 샹들리에, 육중한 티크 나무 출입문에 북한의 나라꽃인 목란이 새겨진 접견실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곧바로 접견실 문이 활짝 열렸다.

이윽고 빨간 카펫 위로 우뚝 서 있는 김 주석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金 주석에게 다가 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주석님, 안녕하십니까. " "어서 오십시오. " 분단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 손을 잡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글= 강영훈 전 총리

◇강영훈은 누구인가

강영훈 (姜英勳) 세종연구소 재단 이사장만큼 다양한 경력을 지닌 사람도 드물다.

그는 본시 군인 (육군중장) 이었으나 5.16에 반대, 당시 '반혁명 분자 1호' 로 지목됐었다.

그 바람에 육사 교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어야 했고 실형도 살았다.

그 1년후 도미 (渡美) , 고학 (苦學) 으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 외교안보연구원장 등을 지내면서 한동안 교육행정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80년대 초부터는 영국.로마교황청.외무부 본부대사를 잇달아 역임하는 등 활동무대를 나라 밖으로 넓혀 나갔다.

6공화국 초기에는 잠시 민정당 전국구 의원을 지내다가 88년말 제21대 국무총리에 임명돼 2년 재임기간중 역사적인 남북 고위급 회담을 추진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91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맡아 무려 7년간이나 그 자리에서 일했다.

1922년 함경북도 창성출생으로 80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현재 그에게 붙여진 직함만도 30개가 넘는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바로 " '아니오' 라고 말할 수 강영훈" 이 살아 온 삶의 얘기들이다.

'안일한 불의 (不義) 보다 불편한 정의 (正義)' 를 좆아 살아 왔다며 수줍어하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정직한 소년의 마음' 을 지니고 살아가는 순도높은 원로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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