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 지상 백일장 5월] 장원 -주문진항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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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장원] 주문진항

이제 막 건져 올린 생태 한 마리 시린 동공

이승과 저승 사이 저울 눈금 흔들릴 때

눈조차 감지 못함은 어쩔 수 없는 천형인가.

"우린 뭐 먹고 살란 말여" 아낙네들 맵짠 억척

엎어진 함지박에 터지는 욕지거리

갈매기 부리 끝에 문 살점조차 씻어낸다.

저녁엔 꽁치 굽는 간간한 바닷내

불에 튀는 굵은 소금 허연 연기 묻어

소금기 테 두른 신발 아파트 계단 오른다.

노영임 <충북진천군진천읍신정리 우미아파트101동401호>

[차상] 목련

겨우내 소식 끊어진 내 귀엽던 아들아

언 강 밑자락을 자라처럼 목을 늘여

끼니와 잠자리 찾아 진흙 속을 헤매느냐

네 어릴 때 뛰며 놀던 고향집 마당어귀엔

해맑은 너의 모습 목련꽃이 피었구나

엄마야 부르는 소리 마디마다 맺혀 있는

육신은 다 미어져도 마지막 푸는 유선 (乳腺)

조각난 너의 일상들 이 어미가 엮어 주마

해조음 산모롱이 돌아 성큼성큼 달려오련.

문무열 <경남진해시풍호동 오성아파트102동707호>

[차하] 영취산 진달래

우리는 꽃물 터지는 여수 영취산으로 간다.

화학공장 굴뚝연기 쿵쿵 숨을 몰아쉴 때쯤

진달래 밑둥 하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섬진강 남해고속도로 차량행렬이 장구처럼 잘록해지고

구부러진 가지만큼이나 진하게 배어나는 꽃냄새

아내의 얼굴에 봄이 묻었다. 노상 화왕산 진달래구만!

김종길 <경남창녕군계성면광계리1004번지>

◇ 심사평

시는 표현 이전부터 존재한다.

이는 시의 언어가 전하는 의미 이상의 '그 무엇' 을 포함한다는 것이리라. '그 무엇' 을 명징하게 하기 위해 시조는 리듬감, 이미지, 연상작용을 향한 五感의 더듬이를 더욱 곤두세워야 하는 건 아닐까.

한.일 어업협정이라는 굴욕적 사건을 형상화한 노영임의 '주문진항' 은 곤비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장원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목련' 이라는 진부한 소재로 충만한 모정을 잘 갈무리한 문무열의 서정이 차상, 압축의 묘가 부족하지만 '영취산 진달래' 에서 보이는 김종길의 참신한 상상력은 차하를 차지했다.

<심사위원 윤금초.홍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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