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착상 돋보이는 심리극 '키큰 세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10년전, 20년전, 혹은 30년 전의 '나' 는 지금의 '나' 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의 나를 또 하나의 자신으로 인정할까, 아니면 거부하려고 몸부림칠까.

미국작가 에드워드 올비에게 세번째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 '키큰 세 여자' 는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92세 노인의 육체 앞에서 92년을 살아온 현재의 그녀와 아직 그만큼을 살아내지 못한 52세, 26세의 분신들이 대화를 나눈다.

92세의 나는 모든 것을 겪었지만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때론 26세, 52세의 '나' 가 더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누구와 결혼을 할지, 어떤 아들을 갖게 될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

때론 이들은 의견이 엇갈린다. 26세의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지만 92세의 나는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만큼이나 어머니도 변하기 때문에 둘의 관계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동성애자로써 양어머니와 갈등을 겪었던 올비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 모든 기억과 엇갈림을 세 인물의 팽팽한 긴장관계로 묘사한 연극 '키큰 세 여자' 가 강유정 연출로 무대에 오른다. 02 - 764 - 3375.

6월 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연강홀에서 막이 오르는 이 작품에는 김금지.이용이.손봉숙이 각각 92세와 52세.26세의 A.B.C로 출연한다.

처음 노인역을 맡는 김금지가 완고하지만 매력적인 A를 어떻게 소화해낼지 눈길이 모아진다.

가벼움보다 인생의 성찰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이 눈요기거리 만을 찾는 요즘 우리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게될지도 또 하나의 관심거리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