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압도하는 윤이상예술혼…국내초연 오페라 '심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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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판소리와 창극의 소재로 등장했던 심청의 이야기는 단순히 '효 (孝)' 를 강조하는 전래 동화에 그치지 않고 불교.도교.무속이 한데 뒤섞인 한민족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국내 상연이 좌절됐던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이 72년 뮌헨올림픽 문화축전 개막공연에서 초연된지 27년만에 국내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막이 오른 이 작품은 국내 초연이라는 점 만으로도 한국 오페라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만큼 충분히 의의 (意義) 있는 공연이다.

하지만 초연 당시 축전음악이라는 특성 때문에 충분한 재원 (財源) 활용으로 가능했던 장대한 규모의 무대는 '초연' 이라는 역사적인 명분에 가려 초라하게 축소됐다.

작품의 시작과 끝부분에 어린 아이 세명을 등장시켜 동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의 나래를 펴게 하는 조명과 입체감있는 무대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번 공연을 이끌고 간 원동력은 오히려 윤이상의 음악 그 자체였다.

무대와 연출은 줄거리를 충실하게 재현한 것도 아니고 과감한 생략 기법을 구사해 현대적 감각을 살린 것도 아니다.

극장 전체를 뒤흔들듯한 장대한 규모로 흐르는 악상에 비해 무대는 평면적이었다.

처음부터 관객의 관심을 끈 것은 용궁과 하늘나라를 오가는 환상적인 무대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감이 컸을 터. 오히려 처음 접하는 윤이상 오페라에 담긴 무궁무진한 음악적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코리안심포니 (지휘 최승한) 의 눈부신 활약에 비해 합창단의 역할은 미미했다.

합창단이 이 오페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매우 마을 사람들이나 선원들로도 나오지만 서사적 줄거리와는 관계없이 장면 전환 때마다 등장, 이 전래동화에 깔린 의미심장한 교훈을 들려준다.

합창단의 위치가 무대 전면이라 마치 약간의 연기와 무대세트를 곁들인 칸타타나 오라토리오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차라리 콘서트 형식을 빈 오페라 공연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낭송에 가까운 선율이 많아 번역 가사의 장점을 살렸으나 심청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독일어 가사로 된 원작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봉사 역의 바리톤 김동섭, 강하면서도 갸냘픈 고음 (高音) 을 잘 처리해낸 소프라노 박미자.김애경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뺑덕어멈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의 개성있는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오페라 '심청' 공연은 25일, 27일, 30일, 6월2일로 계속된다.

공연개막 평일 오후7시30분, 일요일 오후3시30분. 화요일 (25일) 공연은 특별 할인. 02 - 580 - 1300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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