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사람까지…' 제2사정설 계속 떠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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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2사정 (司正) 의 실체는 과연 있는 걸까. 검찰이 홍두표 (洪斗杓) 전KBS사장과 박희원 (朴喜元) 경찰청 정보국장 (치안감) 을 전광석화처럼 구속한 뒤 정계와 관계.경제계에선 제2사정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이에 앞서 이정보 (李廷甫) 전 보험감독원장.이수휴 (李秀烋) 전 증권감독원장 등 중량급 인사들이 신동아그룹 최순영 (崔淳永)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잇따라 수감됐다.

'최순영 리스트' 로 시작된 제2사정설은 단순히 거물급들이 사법처리됐기 때문이 아니라 "배후에 뭔가 있는 것 같다" 는 의구심 때문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洪전사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금모으기 운동' 을 적극 지원했고 KBS를 떠난 뒤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잘 나가던' 인물로 여권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전북 출신인 朴치안감의 경우도 2천여만원을 수뢰한 정도면 사표를 받는 선에서 슬며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텐데 구속됐다.

검찰의 이같은 엄정한 법집행은 "누구든지 죄가 확인되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는 분위기를 먼저 조성한 뒤 결국 정치인 사정으로 가려는 수순이란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젊은 피 수혈론.대폭 개각설까지 맞물리면서 제2사정설은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전면 부인한다.

대검 고위관계자는 "최순영 회장은 洪전사장에게 1억원을 줬는데도 KBS의 보도가 우호적이지 않은데 불만을 품고 洪전사장의 이름을 털어놨다" 며 "검찰이 특정 계획에 따라 사정을 하는 게 전혀 아니다" 고 말했다.

朴치안감에 대해서도 애초에는 사표 제출을 종용했으나 그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바람에 소환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가 수사에 일절 간섭을 안해 검찰로선 편하다" 며 "그러나 정치권 전반에 대한 사정계획은 없으며 검찰총장 임기가 불과 두달여 남았고 6.3 재선거가 목전이어서 정치인 사정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고 강조했다.

따라서 당장의 관건은 최순영 회장의 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디까지 진술하느냐에 따라 불어닥칠 회오리의 강도가 결정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洪전사장 사법처리가 끝나자마자 광역자치단체장 한명이 崔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현재로선 검찰이 조직적으로 사정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 관계자들은 정치인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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