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낮고 담보 없어도 창업자금 빌려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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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7월 초 서울 시흥동에서 치킨가게를 연 김명후(42)씨는 창업자금이 부족해 은행을 찾았지만 돈을 빌릴 수 없었다. 신용등급이 6등급은 돼야 대출이 가능한데 그의 신용등급은 8등급에 불과한 까닭이다. 결국 그는 저축은행에서 자신이 소유한 연립주택을 담보로 2000만원, 신용대출로 3000만원을 빌렸다. 그러나 그가 신용대출에 물어야 하는 금리는 연 19%에 달한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김씨처럼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로 맡길 만한 부동산이 마땅치 않은 사람도 창업자금을 빌리기 쉬워진다. 정부가 저소득 개인사업자를 위한 대출을 확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민 세금은 안 쓴다=저소득·저신용자의 창업을 돕기 위한 소액대출사업을 통상 ‘마이크로 크레디트’라고 한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업을 확대 시행하기로 하면서 ‘미소(美少)금융’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름다운 소액대출’이란 뜻이다. 굳이 ‘아름답다’에 초점을 맞춘 이유에 대해 금융위 배준수 중소서민금융과장은 “일반 기업과 금융기업의 기부금을 활용하면서 서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대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 사업의 확대를 놓고 4개월여간 고민을 거듭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면서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일이어서다. 그러나 재원 확보가 문제였다. 재정을 투입하자니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경련과 금융회사들이 총대를 멨다. 향후 10년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 기업들이 1조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LG·현대자동차·SK·롯데·포스코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회원사들이 흔쾌히 기부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들도 휴면예금 출연금 7000억원과 기부금을 합쳐 1조원을 내놓는다. 일반인들도 미소금융중앙재단에 기부할 수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서민들의 자활 지원을 위한 대출사업이지, 복지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에선 어떤 지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반 생활자금 대출을 제외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자활 지원이 핵심=대출 대상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다. 금융권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 중인 채무불이행자는 제외된다. 다만 신용회복위원회에서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빚을 성실히 갚고 있는 사람은 대상이 될 수 있다.

취약계층에 일자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엔 1억원까지 대출되지만 개인 대출한도는 5000만원이다. ‘마이크로’라는 이름치고 꽤 큰 금액이다. 특히 프랜차이즈 창업 지원이 처음 도입됐다. 예컨대 어느 정도 검증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할 경우 본사에 내야 하는 로열티나 상가 권리금 등으로 최대 5000만원까지 대출해 준다는 것이다. 대출 기간은 종류에 따라 다른데 1년 거치(무이자)에 4년 분할 상환이 기본이 될 전망이다. 또 금리는 연 5%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보다 낮게 책정된다.

대출 심사는 12월부터 본격 설립될 미소금융 지점에서 이뤄진다. 금융위는 내년 5월까지 20~30개의 지점을 설립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3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점이 설립되는 대로 사업이 시작되므로 이르면 내년 초부터 대출이 이뤄진다.

◆풀어야 할 숙제도=금융위에 따르면 이번 사업의 수혜자는 10년간 20만~25만 가구로 전망된다. 연간 수혜자가 2만~2만5000가구쯤 되는 셈인데, 이게 충분한 숫자인지 검증된 것은 아니다. 또 일반 금융회사와 달리 연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대한 실행 계획도 과제다. 진동수 위원장도 “대출 후 회수가 커다란 숙제”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모델 자체가 한국 실정에 맞느냐에 대한 해묵은 논란도 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발달한 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 등은 금융 시스템이 낙후돼 있다. 또 경제 규모가 작아 개인이 소액으로 자영업을 시작할 여지도 많다. 반면 우리의 경우 제도권 금융이 발달해 있는 데다 개인이 소규모 자영업으로 웬만큼 벌이를 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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