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생명력…즐거운 고통…재즈가 나를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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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요즘 1백여 객석이 꽉꽉 차는 강남의 한 재즈클럽. 잘 차려입은 '여피족' 손님들이 대화에 열중하고있다. 무대 위에선 열정적인 재즈선율이 뿜어지고 있으나 왠지 객석과는 따로 노는 분위기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들린다는 40대 미국인은 "좋아하는 대목마다 박수도 치고, 몰입하고 싶은데 동참할 주변 손님들이 보이지않아 아쉽다" 고 말한다.

'거품' 에 둘러 싸여온 국내재즈문화의 단면이다. 재즈를 소재로 소설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 을 쓴 장정일은 지난해 출간된 '독서일기.4' 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동안 광적으로 들었던 재즈는 깊이 없는 넓이, 바로 거품이었다재즈 음악은 빈곤, 할렘 사창가의 폭력, 알콜과 마약, 모욕을 경험해본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이런 점을 떠올리며 이제껏 들어온 재즈의 거품을 거두고 찬찬히 재즈를 들어볼 때다. " 그처럼 '거품으로서 재즈' 를 공격하는 말은 지금까지 많았다.

그러나 그 역으로, "진지하게 재즈를 들어보면 재즈는 쉽다" 같은 전문가적 발언도 일반인에게는 콤플렉스를 안겨준다. 최근 '재즈를 재미있게 듣는 법' (민음사) 을 펴낸 시인 유하. 대학생 시절만 해도 재즈는 '젠체하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알았던 그는 시상을 떠올리려고 찾았던 집 근처 '재즈카페' 에서 문득 재즈에 홀려버린다.

"빌리 홀리데이 곡이었죠. 순간적으로 휴일 아침 먼지 낀 창문으로 비쳐드는 하얀 햇살이 떠오르는 거예요.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미묘한 느낌…. 이거였죠. " 유하처럼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재즈를 감상하고 여기에 신선한 단상을 덧붙인 에세이풍 재즈입문서들이 많이 나왔다.

'재즈를 찾아서 (문학과 지성사)' 에 이어 최근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 '마일스' (전3권.집사재) 를 번역한 시인.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 96년 재즈 초심자를 위한 입문서 '재즈 한번 들어볼래?' (하성우 디자인연구소) 를 펴낸 그래픽 디자이너 심재경 (28.휘닉스 커뮤니케이션 제작7팀) 등등이들이 '재즈에 빠진 까닭' 과 그들만의 감상법을 알아본다면 재즈에 대한 이해가 좀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성기완은 중학생 시절 우연히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의 공연을 보고 재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난해한 프리 재즈였는데, 당시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어요. " 그는 재즈에는 '길' 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미국 뉴올리언즈 홍등가에서 자라난 음악인만큼 짓밟히지 않는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 이같은 점에서 그는 "연주자끼리 서로 눈빛을 나누면서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연주 현장을 직접 찾아 묘미를 느껴볼 것" 을 제안한다.

'재즈광' 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공통적인 이야기. "솔직히 재즈 맛을 알려면 책보다는 많이 듣는 것이 결정적이죠. 누구나 재즈팬이 될 수는 없고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 사람만 가능해요. 음악인구의 1%쯤 될까요. "

강찬호.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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