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과 도란도란] 미래에셋, 건투를 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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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후 연가를 내서 미래에셋 00지점을 방문. 도착시간 오후 2시10분. 대기자 수 59명. 5시20분에야 차례 돌아옴. 마감 시간 지나서 가입 안 된다고 하네요. 서류 작성해 둘 테니 내일 아침에 가입시켜 달라고 통사정하고 난 후 겨우 나왔습니다.”

2007년 11월 1일, 한 인터넷 투자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 펀드 가입 후기다. 이 펀드, 한 달 새 4조원이 몰렸다. 그 즈음 한 증권사 직원은 아침 출근길 지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다시 나와 간판을 확인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단다. 포스터·팸플릿 등 지점을 가득 채운 미래에셋 펀드 광고물 때문에 자신이 같은 건물에 들어선 미래에셋증권 지점에 잘못 들어간 줄 알아서다.

2007년 ‘묻지마’ 펀드 열풍 당시, 많은 투자자들이 은행에 펀드 가입하러 가서 “미래에셋 주세요”라고 말했다. 생전 주식시장 문턱에 가 본 적 없었던 이들에게 ‘펀드=미래에셋’이었던 셈이다. ‘복사기=제록스’인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전체 국내 주식형 펀드의 40%는 미래에셋 몫이다. 자산 규모가 2등 운용사의 4배를 웃돈다.

좋았던 2007년이 지나 2008년은 운용사들엔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좀 나아졌다. 암울했던 전망과 예측을 뚫고 시장은 반등에 성공했다. 연초 이후 코스피지수는 46% 올랐다.

같은 기간, 미래에셋 펀드가 거둔 수익률도 46%였다. 딱 평균만큼 했다. ‘미래에셋은 상승장에 강하다’는 신화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장이 급등한 2005년과 2007년 미래에셋은 평균보다 각각 21%포인트, 9%포인트 초과 수익을 내며 40여 개 운용사 가운데 1등과 3등을 했었다. 미래에셋으로의 쏠림 현상도 그래서 불이 붙었다.

그런데 요즘 펀드 환매가 많다. ‘펀드매니저에게 맡기느니 내가 직접 투자하겠다’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진 게 큰 이유다. 여기에는 미래에셋의 상대적 부진도 한몫했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미래에셋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안다. 7월 말 13개 대표 펀드의 매니저를 모두 교체한 것도 그래서다. 국내 주식형 펀드 중 덩치가 가장 큰(설정액 3조4200억원) ‘인디펜던스K-2’는 서재형 전무로 바뀌었다. 서 전무는 ‘운용의 최전선’에서 미래에셋의 전성 시대를 일군 인물이다. 장기 투자 문화를 선도하는 어린이 펀드의 대표 주자 격인 ‘우리아이3억만들기’는 손동식 주식운용부문 대표가 직접 운용을 맡기로 했다.

펀드매니저 교체 후 수익률 상위권 펀드에는 ‘미래에셋’의 이름이 다시 많아졌다. 최근 1개월 수익률만 따지면 27개 펀드가 ‘톱100’(설정액 100억원 이상)에 들어간다. 반면 연초 이후부터 따지면 수익률 100위 안에 든 미래에셋 펀드는 6개뿐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미래에셋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한다”며 “독식은 밉다. 그러나 펀드 시장의 발전을 생각하면 미래에셋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이 아니라 1500만 투자자(계좌 수 기준)를 위해서다. 미래에셋, 건투를 빈다.

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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