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입맛 맞춘 커피 대령등 생각하는 주방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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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 MIT대 미디어연구소에 있는 커피 메이커 '미스터 자바' 는 범상한 커피기계가 아니다. 컴퓨터와 연결된 이 커피 기계는 자신의 전용 머그컵만 받쳐 놓으면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에스프레소' 를, 우유가 듬뿍 들어간 사람에게는 '카페 라떼' 스타일을 제공한다.

비결은 개인 머그컵 바닥마다 붙어있는 꼬리표와 이를 인식하는 미스터 자바의 센서. 어떤 스타일의 커피를 좋아하는 지 기억해 뒀다가 매번 입맛에 딱 맞게 제공하는 것. 커피가 컵에 가득 찰 때를 기다리는 사이에 날씨.인터넷 뉴스.증권소식까지 내놓는다.

이 연구소의 마이클 홀리교수는 "어떤 공간보다 주방이 중요해졌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음식만들기는 그동안 첨단 과학의 혜택을 입지 못했었다" 고 말한다.

최근 개발된 미스터 자바는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 연구소의 5년 연구과제 '카운터인텔리전스' 의 출발에 불과하다.

이미 '베이글을 자르는 레이저' , 빵이 다 구워졌음을 알려주는 '말하는 미트' 같은 것들이 시제품으로 개발됐다.

"냉장고와 오븐 같은 주방기기에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게 하고 저장된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는 것도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연구과제 중의 하나" 라고 연구소 부소장 앤드루 리프먼박사는 말한다.

이렇게 되면 오븐이 냉장고에 남아있는 음식물의 종류와 양에 따라 적당한 요리법을 추천해줘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먹다 남은 음식들을 뒤적거릴 필요가 없어진다.

요리를 만들 때 단계별로 친절히 요리법과 재료의 양을 알려주는 주방카운터를 개발하는 것도 이 연구소의 주요 목표다.

국내기술로도 물론 이런 첨단 주방기기들을 만들 수 있다. 주로 가전제품을 만드는 대기업들이 활발히 연구 중이다.

삼성전자가 지난1월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주방기기 쇼에 출품한 '인터넷 레인지' 를 보자. 스캐너로 바코드가 달린 식품을 읽어 식품별로 조리시간을 달리 하는 것은 물론, 조리 중에도 레인지에 달려있는 PC의 모니터로 새로운 요리법이나 할인쿠폰을 인터넷을 통해 받아 볼 수 있다.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식품을 레인지에 넣으면 포장에 바코드가 붙어있지 않은 식품들까지 종류와 조리시간을 완벽하게 알아내 조리시간을 조절하는 전자레인지가 목표" 라고 삼성전자 리빙사업부 박태수 (朴泰洙) 박사는 말한다.

LG전자도 95년부터 '감성공학프로젝트' 를 진행 중. 주방기기 쇼에는 적외선 센서를 부착한 레인지를 내놨다.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따뜻하게' '뜨겁게' '미지근하게' 라는 감성온도를 기억해 놨다가 취향에 맞게 내놓는 제품이다.

현재 분 단위로밖에 조절되지 않는 '원시적인' 렌지에 비하면 훨씬 다정다감한 기계인 셈. 광자 (光子) 를 이용한 오븐도 미국 GE와 공동으로 개발이 끝났다.

겉은 노릇노릇하게 오븐처럼 구워내면서 조리시간은 전통 오븐보다 두 배나 빨라져 전자레인지와 오븐의 장점을 합쳐놓은 제품이다.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 이구형 (李九炯) 박사는 "외국에서 연구 중인 첨단 주방기기들은 우리도 지금 모두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시제품 하나 만드는 데만 2천만원 이상이 들어 섣불리 만들지 못하고 있을 뿐" 이라고 말한다. 이런 첨단제품들이 언제쯤 우리의 주방에 등장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에서 만든 배터리와 전원 겸용인 '휴대용 전자레인지' 는 하반기 중 상품화될 예정. 다른 제품들은 얼마나 팔릴 것인지, 구매자들이 어느 정도의 '첨단' 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지에 달려 있다.

李박사는 "지금은 하루라도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전자레인지도 5년 전엔 그리 많지 않았다" 며 "빠르면 2년 늦어도 5년 안에는 부엌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포장된 식품들이 모두 바코드화 돼 있고 조리된 인스턴트 식품을 데워먹는 문화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그 시기가 훨씬 빠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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