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핵심 소재 국산화해야 미래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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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아침 8시 건설사 설계엔지니어인 A씨는 인공지능 운행시스템을 장착한 전기자동차에 회사로 가라는 음성 명령을 내린다. 회사로 가는 동안 가방에서 전자페이퍼를 꺼내 다양한 영상 보도를 본다. 오후 2시 제주와 해남의 실무팀들과 함께 사이버 회의실에서 해저터널의 3차원 설계도 영상을 놓고 공사 일정을 조율한다. 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전자페이퍼에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각국 증시의 시황을 보면서 재킷 소매에 부착된 컴퓨터 단말기로 주식거래를 한다. 지하 주차장에서 집이 있는 150층까지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가사도우미 로봇과 홈네트워크가 집 정리, 실내 온도와 습도 조정 같은 것을 알아서 해 놓았다. 저녁 8시에 시작된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60인치 초박형 디스플레이로 본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한 모습이다. 필자의 상상에 나오는 제품들은 이미 세상에 태어났고 곧 우리의 일상생활에 보편적으로 쓰일 것이다. 편리한 기능과 뛰어난 성능을 가지는 제품이 현실로 되는 것은 항상 거기에 필요한 소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어떤 제품이 가지는 기능과 성능은 그 제품을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소재가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능이 뛰어난 소재를 사용하면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세상에 나오고, 이러한 제품들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생활이 보다 편리해지고 윤택해지는 등 일상생활의 모습을 바꾸어 간다. 소재가 우리 생활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필자의 상상에서 우리의 미래 생활상은 현재보다 더 편리하고, 윤택하고, 쾌적하고, 깨끗하다. ‘보다 깨끗하다’라고 하는 것은 ‘보다 깨끗해질 수 있다’가 아닌 ‘보다 깨끗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환경 규제를 시행하게 된다. 현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 문제 해결과 새로운 경제 도약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래의 우리 생활을 저이산화탄소화하고 우리나라 산업을 녹색산업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업의 현재 상황을 보면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누적된 대일(對日)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약 1800억 달러에 이르며, 2008년에만 254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다. 특히 소재 분야의 대일 적자는 2003년 59억 달러에서 불과 5년 만에 115억 달러로 급속하게 증가해 전체 대일 적자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소재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걸림돌인 대일 적자의 주범인 것이다. 수출을 하면 할수록 일본에서의 소재 수입이 늘어나 적자가 함께 늘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스템 개발과 보급 위주 형태로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밀고 나간다면 필요한 핵심 소재를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에는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고스란히 일본에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고, 동시에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을 통해 실현될 세계 일류 국가를 만들어 가는 지름길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 소재를 우리 손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