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지도] 5. 인권운동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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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87년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반독재.민주화 운동으로 일관하고 있던 우리 시민운동권에 인권운동이 독립적 화두로 대두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전까지 인권운동은 시국 관련 구속자 등 피해자 권리구제 중심으로 이뤄졌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가협)가 그 대표적 단체. 민가협은 이후 시위 등을 통해 인권탄압 사례를 국민에게 알리는데 적극 나섰다.

이 시기에 이른바 '인권 변호사' 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특히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호인단에 고 황인철.고 조영래 변호사를 비롯, 이돈명.홍성호.조준희 등 1백66명의 변호사가 대거 참여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군사독재 시절 개인적 피해를 감수하며 인권침해에 온몸을 던져 맞섰던 이들은 88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변) 을 창립하고 양심수의 인권옹호 등에 앞장섰다.

이와 함께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는 천주교 인권위원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 인권위원회.불교 인권위원회 등의 종교계 인권단체. 이들은 독재정권에 감히 맞서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인권탄압 사례를 고발하며 투쟁했다.

박종철군 사건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 사건에 항의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이어 김승훈.함세웅.오태순 신부를 필두로 한 사제단은 '고문치사가 축소됐다' 는 성명을 발표, 6월 민주화항쟁이 촉발됐다.

인권운동의 흐름을 한 단계 발전시킨 계기는 '인권운동 사랑방' (사랑방) 의 창립과 활동이다.

학원간첩단 사건 관련혐의로 71년부터 17년간 복역했던 서준식씨가 산파역할을 한 사랑방은 일반인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갖가지 인권침해 사례까지 찾아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사랑방은 팩스 신문인 '인권하루소식' 을 발간, 회원들에게 인권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 해마다 '인권영화제' 를 개최, 인권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문화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인권운동 단체들은 IMF 이후 침해당하고 있는 시민의 경제적 권리를 확보하는 일이 현재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국가권력에 대항한 '자유권' 쟁취 운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존권' '생활권' '사회권' 의 확보 쪽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이 시대 인권운동 단체들의 최대 과제다.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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