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세상보기] 사오정은 미국을 잘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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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오정 떼거리가 우르르 다방에 들어왔다.

첫째 사오정이 주문한다. "난 커피. "

둘째 사오정이 주문한다. "그럼 나도 홍차. "

셋째 사오정이 주문한다. "나머지도 모두 통일하지. 여보세요 여기 인삼차 넉잔 주세요. "

그러자 사오정 웨이터가 와서 말한다.

"손님들, 우리 집에선 율무차는 안파는데요. " 순간 사오정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잠깐 침묵끝에 한 사오정이 말한다.

"어허 여기선 콜라를 안판다는군요. 그냥 엽차만 마시면서 얘기를 나눕시다. 여러분들은 미국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디 앉은 순서대로 말해봅시다. "

나는 미국이 슈퍼맨 (Superman) 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맨은 우주의 하늘을 종횡무진 날며 악당들을 쳐부순다.

슈퍼맨은 평소에는 어리숙한 신문기자인 척하지만 한번 몸을 돌리면 괴력의 사나이로 변한다.

처음에는 그의 경천동지 (驚天動地) 하는 힘이 그만의 독특한 슈퍼맨 복장 - 몸에 착 붙는 푸른색 내복과 겉에 입는 삼각 팬츠 - 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크립튼 행성의 힘을 받고 태어난 정의의 사도 (使徒) 임을 알고는 세계인이 모두 경외 (敬畏)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무결한 세계 경찰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그는 하늘을 날며 지구촌을 감시하다 유고와 코소보가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유고가 하도 악독하게 굴기에 그는 벼락을 날렸다.

그 벼락이 싸움 구경을 하던 중국사람에게 맞았다.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오늘은 나도 되게 안맞네!" 라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때울 수는 없다.

그는 "오 나의 비극적 실수!" 라며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있다.

그의 벼락은 자주 사태를 악화시킨다.

그래 내 생각도 똑같다.

나도 그전부터 미국은 배트맨 (Batman) 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흑망토.흑가면의 사나이. 악으로 가득찬 고담시의 불한당들은 배트맨의 얼굴만 봐도 자지러진다.

또 그가 타는 변신 자동차 배트모빌은 그의 과학두뇌가 만들어낸 첨단기술의 결정체다.

단 한발로 축구장 크기의 시가지를 쑥밭으로 만드는 집속탄 (集束彈) , 발전소라도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만드는 흑연폭탄 등이 그의 최신작이다.

그는 충실한 조수 로빈 (일명 원더보이) 을 데리고 다닌다.

로빈은 배트맨의 말만 떨어지면 "좋은 생각이야, 배트맨" 하며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그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나 사오정은 거기까진 모르겠다.

사오정들의 생각은 어쩜 그리 비슷할까. 나도 미국은 터미네이터 (Terminator) 라고 생각한 지 오래 됐다.

미국이야말로 해결사이자 종결자 (終結者) 이다.

세계의 모든 골치아픈 분쟁은 미국이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끝장이 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 기치 (旗幟)가 올려진 뉴 인터내셔널리즘 - 인권이 무시되는 곳에 국가 주권은 존중되지 않는다는 새 국제질서 이론 - 에 입각하면 터미네이터의 행동 반경은 더 넓어진다.

(평양쪽도 조심해!) 터미네이터는 미래에서 온 구원자다.

그가 없으면 인류의 미래도 없다.

참 오늘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오정들만 모였네. 나도 예전부터 미국은 람보 (Rambo) 라고 생각했다.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지키려는 불굴의 전사. 어떤 위험에건 단신으로 도전하는 용기와 고집의 화신. 특히 빨갱이들은 그의 폭탄화살 앞에서 초개 (草芥) 와 같이 쓰러진다.

간혹 그의 근육질과 주먹 우선을 싫어하는 약골들은 "람보식 정치는 필요하지 않아" 라고 투덜대지만, 그가 아니면 누가 아메리카 넘버 원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사오정들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사오정 웨이터가 또 온다.

"당신들 지금까지 007 제임스 본드 얘기를 하고 있었지? 본드는 미국사람이 아니고 영국사람이야, 이 사오정들아. "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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