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종교단체 '종말론' 내세워 거액헌금 종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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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기말을 맞아 '시한부 종말론' 이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종말론을 내세우는 일부 종교단체 신도들이 전재산을 처분하거나 대책없이 빚을 내 교단에 헌납,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계통의 H선교협회, 민족종교 계열인 C회 등이 올해 중 또는 내년 초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며 신도들에게 거액의 헌금을 종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관악구봉천동에 본부를 둔 H선교협회. 한때 전도사였던 여교주 (56) 를 '하느님의 신부' 로 신격화한 교단이다.

이 협회 신도였던 陳모 (40.경북 영천) 씨는 "올해가 대재앙과 종말의 해라는 이들의 말에 끌려 집과 땅을 팔아 7천만원을 바쳤다" 고 말했다.

식당업을 하던 金모 (34) 씨도 "패물은 물론 적금과 승용차까지 헌납했다" 며 "이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경북지역 신도 2백여명이 지난달 탈퇴했다" 고 전했다.

취재팀이 입수한 H선교협회 대구지부 E교회의 온라인 송금내역에 따르면 96년 말부터 지난 3월까지 2년6개월 동안 6억2천여만원을 서울 본회에 보냈다.

그러나 본회에서 내려온 돈은 목사 월급.건물 임대료 등 한해에 약 2천만원. E교회 한 군데서만 연 1억5천만원 이상이 본회로 헌납된 것이다.

이를 전국 지부로 확대하면 본회가 거둬들이는 헌금은 연간 수백억원대로 추산된다.
이 조직을 탈퇴한 禹모 (38) 목사는 "정기모금 외에 교주 생일과 지방순회 때마다 지부에서 헌금을 내므로 피해액은 더 클 것" 이라고 말했다.

신도들에 따르면 H선교협회는 93년부터 매년 "올해 종말이 오니 모든 것을 바치라" 고 했다.
그러다 해를 넘기면 "새해에 교회 1백개를 더 세우라는 사명을 받았다. 이를 완수하면 종말이 오고 천국에 간다" 는 등 말을 둘러대곤 해왔다.

H선교협회는 현 총회장인 金모 (39) 씨가 86년 창립, 93년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면서 교세가 급신장했다.

교단 주장에 따르면 현재 신도 20만명에 지부가 2백80여개. 총회장 金씨의 형.누이 등이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2000년 정월 대보름에 종말이 온다" 고 주장하는 C회. 사업가 출신 교주 (61) 와 부인 (46) 을 각각 천부.천모로 부른다.
80년대 중반부터 기 (氣) 수련도장을 운영하면서 세를 늘려왔다.

C회는 강원도 홍천 20여만평 부지에 5백평 규모의 대라천궁 (大羅天宮) 을 비롯해 낙원전.영빈관 등 성전을 세웠고 식품.유통회사 등 11개 기업도 경영하고 있다.

이런 성장과정에서 많은 신도들이 자기 재산은 물론 금융기관에서 대출까지 받아 헌납했으며, 이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명예제자' 로 불리는 C회 핵심 신도 중 50명의 부실채권자 명단을 취재팀이 확보, 금융기관 부실채권 자료와 비교한 결과 이들은 맞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1인당 많게는 40개 금융기관에서 1천만~2천만원 (보통 2년 만기) 씩 소액대출을 받았다.

이중 부실채권 액수는 1인당 최고 10억원에서 2천만원까지 총 1백13억여원이다.

축협 채권관리부 金모 (42) 과장은 "C회 스스로 명예제자 수가 1천2백명이라고 밝히고 있어 전체 부실채권 규모는 1천억원이 넘을 것" 이라고 말했다.C회는 전국에 3백50여개 수련도장을 가지고 있으며 신도 수가 15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말론과 헌금 종용 문제에 대해 C회의 강상호 사무국장은 "본부 차원에서 종말론을 주장한 적은 없으며 '대출 헌금' 역시 본부에서는 종용한 바 없다" 고 밝혔다.

기획취재팀 = 고종관.이영기.권혁주 기자

◇ 1999년 6월19일자 2면 정정과 반론 = 5월8일자 1면 '일부 종교단체 거액현금 종용'기사와 관련,H선교협회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해 왔다.

"첫째, 본 협회는 구청·세무서에 등록된 비법인 종교단체다.둘째 협회는 진모씨로부터 헌금을 받은적은 있으나 액수가 7천만원이 안되며, 김모씨로부터 자동차를 헌납받지 않았다.

셋째 협회장 친인척이 비서 등을 맡은 적은 있으나 현재 사무국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넷째 협회는 헌금을 종용하려고 매년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지 않았으며,잉여헌금이 매년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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