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극단 실험극장 '오봉산 불지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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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시신을 훔쳐가고 무덤에 칼을 꽂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사건들이 벌어지는 요즘 뒤바뀐 시신에 관한 연극 한 편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목도 기묘한 '오봉산 불지르다' .정통극단의 명성을 40년째 이어오고 있는 실험극장이 새 피 수혈을 위해 마련한 창작실험무대의 첫 작품으로 올리는 이 작품은 관객들이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어 부담없다.

작가 홍창수의 상상력도 기발하고 이를 풀어내는 연출가 윤우영의 감각도 남다르다.

작품 형식은 판소리와 굿 양식에서 따왔다. 무식하고 가진 것 없는 건달 배옹헤 (엄효섭 분) 와 끊임없이 역할 바꾸기를 하며 관객을 마음대로 쥐었다 놓았다 하는 고수 (鼓手.박철민) 두 사람이 풀어가는 줄거리는 어찌 보면 진부할 수도 있지만 실험적인 면에서는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옹헤는 재벌 황거창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한다. 사연인즉 옹헤가 아버지의 시신과 옆 영안실에 있던 갑부 황거창 (유정기) 의 시신을 바꾼 것.

환경미화원 아버지를 사후에라도 편히 모시기 위한 효성이었지만 정작 아버지는 호사스런 무덤을 부담스러워하고, 졸지에 화장 당한 황거창의 혼은 환생할 시신을 찾지 못해 옹헤 주변을 맴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옹헤 어머니 혼은 엉뚱한 사람의 무덤에 묻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해 옹헤를 찾아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하려면 오봉산을 찾아 불을 지르라" 는 행려스님의 말을 좇아 옹헤는 오봉산을 찾지만 같은 이름의 산이 너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른다. 결국 그가 찾은 오봉산은 어디일까. 무대에서 실제로 이 오봉산을 불태운다.

극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옹헤가 운전하는 자동차 장면과 시신 바꿔치기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깊이보다는 가벼움을 추구한 연극이지만 관객 서비스 면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 5월9일까지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02 - 764 - 5262.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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