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한국, 프랑스 와인의 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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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프랑스 와인 업계에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한국시장에서 부는 '프랑스 와인 열풍'이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랑스 포도주가 한국에서 새로운 엘도라도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 언론이 지난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레드 와인을 무척 즐겼다는 사실을 보도한 뒤 한국인들은 타닌을 마시면 천재성을 갖게 된다고 믿게 됐다"며 "프랑스 포도주는 이 같은 심취현상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일본처럼 원숙한 단계의 시장에서는 '신세계' 와인과의 경쟁이 심해 프랑스 와인 판매가 정체됐거나 후퇴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급성장하고 있다"며 "2002년부터 2003년 사이 프랑스 와인 판매가 40%나 늘었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와인의 85%가 프랑스산"이라며 "이 같은 추세로 일본 도쿄(東京)에 주재하는 프랑스 와인 무역업자들조차 이제는 한국으로 수출할 정도가 됐다"고 전했다.

과잉 생산과 국내 소비 감소라는 이중고에 한숨소리만 깊어 가던 프랑스 와인 생산업자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국내 포도주 소비는 최근 20여년간 50%가량 감소됐으며 그 추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와인을 외면하는 데다 건강에 대한 우려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미국.칠레.호주.아르헨티나.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소위 신세계 와인들에 밀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비싼 가격과 원산지 명칭 통제(AOC)로 대표되는 복잡한 와인 등급 체계가 와인 생산업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세계 와인들은 프랑스 등 유럽의 와인 생산국과 경쟁하기 위해 품질 개량에 박차를 가해 왔다. 가격 대비 품질은 프랑스 와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믿는 전문가도 많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에서만 프랑스 와인의 판매가 늘어난 이유는 뭘까. 한국 소비자들이 무조건 프랑스 와인을 선호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프랑스 와인 업자들이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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