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사위와 장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임진왜란때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權慄) 과 후에 영의정까지 지내는 이항복 (李恒福) 은 옹서 (翁壻) 간, 곧 장인과 사위의 관계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말썽꾸러기 악동 (惡童) 으로 자라 영 장래성이 없

어보이던 이항복을 사위로 맞아들인 것은 권율이었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0세가 넘어 장가를 든 이항복은 그때부터 철이 들어 24세때 과거에 급제하더니 이내 출세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임진왜란이일어났을 때 이항복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도승지로서 왕을 모시고 의주 (義州) 로 향하고 있었고, 당시 의주목사였던 권율로서는 출세를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이항복은 왕에게 남쪽의 위급함을 알리고 자신의 장인을 광주목사로 부임케 해 왜적을 막도록 한다.

전란이 끝난 뒤 이들 옹서는 똑같이 일등공신에 책록 (冊錄) 되거니와 '그 장인에 그 사위' 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사위에 관한 구전 (口傳) 설화들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윗감을 고를 때 장모될 사람은 그 가문의 벼슬이나 재산 정도부터 살피지만 장인될 사람은 사윗감 당사자의 사람 됨됨이부터 살핀다는 점이다.

이런 실화 (實話)가 있다.

어떤 마을의 한 훈장이 마음에 쏙 드는 젊은이가 있어 사위로 맞아들이려 했으나 사윗감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 부인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친다.

훈장은 열흘 동안 단식투쟁을 벌인 끝에 부인의 승낙을 얻어 젊은이를 사위로 맞아들이는데 그 사위가 장원급제해 암행어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아내의 부모는 자신의 부모와 다를 바 없고, 딸의 남편은 자신의 자식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사위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장인은 없을 것이고, 장인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대적인 의미가 있다.

옹서가 모두 잘 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해 (利害)가 상충하는 경우도 곧잘 생기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여당 공천이 어렵게 되자 야당 공천을 받았던 여당 총재의 사위가 갑자기 공천을 사퇴해 정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장인과 사위가 정치적인 이념을 달리할 수는 있지만 그 차원이 아니다.

사위로서는 장인이 야속했을 것이고, 장인으로서는 사위가 괘씸했을 것이다.

정치판에 들어가면 장인과 사위의 관계도 이처럼 달라질 수 있으니 정치란 참 요상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