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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경제 위기론, 결코 과장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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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피서지에 1000만명의 인파가 모이고, 수도권 외곽 갈비집이 초만원이다. '경제가 어렵다'라고 하는 데 기현상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만일 위정자들이 이 현상을 본다면 경기가 잘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행태는 생계형 소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경기적인 국민 행동이다.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에서 제기한 오해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경기를 분석함에 있어 비탄력적인 생계형 소비와 거시경제를 연동시키는 것은 왜곡된 경기전망을 불러오게 된다.

과연 한국 경제가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가, 아니면 기우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나는 분명한 답변을 할 수 있다. 비록 한국 경제가 통화 위기와 같은 체제적 위기 국면을 맞은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경기진행 상황을 감안할 때 '국민적 위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미 개별 경제주체들의 경제적 행동이 시장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주요 경제지표 간의 상호 관련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금리.주가.환율 간의 상호 연동관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 변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투자 수요 및 소비 수요 또한 실종 단계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지 않는다면 어떤 국면의 경기를 위기로 진단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그나마 성장탄력성을 유지한 배경에는 재정 건전성에 기반한 정부의 화폐경제 정책, 즉 저금리 정책을 통한 소비 진작 정책과 적극적인 건설경기 부양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3분기 현재 오히려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고, 그 기간 중 우리 경제가 확대재생산의 길을 창조하지도 못했다. 비록 2003년 하반기 급신장하기 시작한 수출이 경상수지 흑자 폭을 크게 확대하면서 2004년의 경우 어느 정도 성장의 탄력성을 유지해주고 있지만 이 부문조차 고용확대에는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소득의 보전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국민이 정부의 화폐경제정책에 의지해 마이너스 소득으로 소비에 임했으나 그 이후 전혀 소득 보전이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소득 전환을 꾀하지 못했으며,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이를 두고 나는 '한국 경제의 국민적 위기'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위정자들은 국민책임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정책 잘못 혹은 왜곡된 경기해석에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용카드 통합 한도 제도'의 도입 및 그 사용 한도의 과도한 축소를 들 수 있다. 왜곡된 경기해석에 있어서는 2003년 이후 이미 경기침체기에 대비해 기업들이 현금 보유 비중을 확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저 낙관적 시각을 토대로 적절한 경기부양책을 구사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볼 때 정부는 대내외적 경제 환경을 빌미로 그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나 소비 수요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함정'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경제는 분명 '국민적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경제.사회적으로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참여정부의 '확장된 자유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경제.정치적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우리는 화려했던 60년대 남미경제가 왜 80~90년대에 주저앉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경우 '자유의 확대'를 강조한 메넴 대통령의 개혁.개방정책의 실패가 현재의 아르헨티나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사실이 그것이며, 한국 경제 또한 그러한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정 상 일평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