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안와르부인 아지자 필리핀행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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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마하티르 총리의 정적 (政敵) 인 안와르 전 부총리의 부인 아지자 여사 때문에 말레이시아 당국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 19일 당국 몰래 홍콩에서 CNN과 깜짝 인터뷰를 해 정부에 '한방' 을 먹였던 아지자가 이번엔 필리핀을 방문, 반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 총리를 공격하는 강도를 보면 금방이라도 망명 정부를 세울 것처럼 보인다.

28일 필리핀에 도착한 아지자는 남편인 안와르 전 부총리를 "양심수이며 불의의 희생자" 라면서 반정부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또 "남편의 유일한 죄는 권력남용과 부패.연고주의 등의 악행을 은폐하고 있는 베일을 벗겨내려 한 것뿐" 이라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가 아지자의 필리핀 방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과 안와르의 막역한 친분관계 때문이다.

지난해말 안와르의 딸 누를 이자 (18) 는 필리핀 대통령궁으로 에스트라다를 직접 방문해 도움을 호소했을 정도다.

당시 누를 이자는 "큰아버지를 뵙는 심정으로 찾아왔다" 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담 참석차 콸라룸푸르를 방문한 에스트라다가 말레이시아 당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안와르를 면회한 것도 두사람의 친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둘째는 친 (親) 안와르 세력이 필리핀에서 일종의 '망명 정부' 를 수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안와르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아지자의 이번 필리핀 방문목적도 현지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레이시아는 판단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아지자의 필리핀 방문을 내정간섭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필리핀은 이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필리핀은 필리핀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한다.

왜냐 하면 필리핀은 민주국가이기 때문" 이라면서 아지자를 만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에스트라다의 이같은 발언은 "말레이시아는 비민주국가" 라는 비난도 은근히 내포돼 있다.

이런 사정으로 전통적 우방인 양국의 관계가 험악해졌다.

셰드 하미드 알바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27일 필리핀 대사를 불러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집권 통일말레이기구 (UMNO) 도 "필리핀이 내정에 간섭하려 든다" 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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