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화제]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골드러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도대체 왜 아이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지난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고교생 총기난사사건이 있기 전, 97년 여름 일본 고베에서는 14세 중학생의 엽기적인 초등학생 연쇄 살인사건이 일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소년은 "살인을 할 때만은 항상 지니고 있던 증오에서 해방되고 편안함을 느낀다" 고 쓴 성명서를 신문사에 보낸다.

아쿠다가와상 수상작가인 재일교포 유미리씨. 소년과 꼭같은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 이후 자살미수.정신병원 입원.약물복용 등을 겪었던 작가는 사건 자체보다도 성명서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마음 속 어둠에 얽매여있는 소년의 문장을 읽으면서 내 자신의 어둠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는 작가의 말은 14세의 불안에 대한 공감을 뜻한다.

유씨는 이 공감을 바탕으로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텅 빈 내면의 공포에 짓눌리는 세기말의 14세 소년을 자처하면서 소설을 써내려갔다.

지난해 겨울 일본에서 출간,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 소설 '골드러시' (솔.7천5백원)가 번역돼 나왔다. 주인공인 14세 소년 카즈오의 가족은 엉망진창이다.

천진한 어린애같은 형은 불치병환자이고, 누나는 러브호텔을 전전하며 원조교제로 세월을 보낸다.

일그러진 가족관계의 중심에는 파칭코를 운영, 큰돈을 번 배금주의자 아버지가 있다.

학교를 버리고 일탈의 길로 완연히 들어선 카즈오의 내면은 결코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어른' 이기에는 아버지같은 돈과 힘이 없다.

폭군같은 아버지는 후계자로 여기는 카즈오에게 애정을 보이지만, 역시나 일그러진 애정이다.

어른이 되고픈 잠재욕망과 즉발적 분노에 사로잡힌 카즈오는 마침내 아버지를 살해한다.

일탈된 아이들의 내면을 그리는 데서 출발한 작가의 눈이 겨냥하는 것은 세기말 자본주의의 천박한 물신성. 그래서 이 충격적인 소설제목이 '골드러시' 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