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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변화해야할 2000년을 향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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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축구가 세계청소년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하면서, 한국과의 오랜 경쟁관계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과시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장벽에 막혀 항상 예선탈락을 거듭하던 일본 축구가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고 얘기된다.

10년 넘게 체계적으로 추진해 온 거국적인 계획과 투자의 결과라는 것이다.

*** 일본축구 성공을 보면

그들은 정신력과 투지가 특징인 한국 축구에 같은 방법으로 맞서는 전술을 택하는 대신에 스스로를 크게,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을 찾아냈다.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대응이 아니라 근본적인 환골탈태 (換骨奪胎) 를 선택한 것이다.

J리그의 호화판 활성화, 유소년 축구의 광범한 육성과 확산, 시설과 사람에 대한 투자 등은 그 장기적인 프로그램의 일단이다.

한해에도 수백명씩 꿈나무 어린이들을 남미로 유학보낸 그들의 원모 (遠謀) 를 눈여겨볼 일이다.

한마디로 이 모든 몸부림은 일본 축구의 '새로 태어나기' 전략이었던 셈이다.

*** 총체적 변화 먼저 와야

적절한 비교가 될는지 모르지만 일본 축구의 사례는 지금 여기저기서 발목 잡히고 뒤뚱거리는 우리 사회의 개혁에도 교훈이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잘못된 일들을 쫓아다니는 개혁에 앞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변화가 먼저 와야만 그 바탕 위에서 개혁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 사회에 개혁이 필요한 까닭은 오랜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오면서 구축된 잘못된 제도, 낡은 질서와 관행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21세기를 맞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겪고 있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구체적인 원인들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고 고쳐놓지 않으면 안되겠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혁이 필요하고 시급한 이유들이다.

그러나 오늘의 경제위기는 사실 '경제적인 제도나 관행' 의 잘못만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패와 도덕적 해이로 초래됐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제도라고 하는 '실물의 개혁' 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도덕이나 가치관 같은 '정신' 의 변화가 더 중요한 까닭이 그것이다.

'고관집 도둑' 소동이 상징하는 다변적인 사회현상들, 민족의 영웅인 충무공 묘역에 박힌 식칼과 쇠말뚝들, 부모를 살해하고 불지른 아들… 이런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개혁이 어디부터 시작돼야 하는지, 개혁에 앞서 무엇부터 변화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단지 한 세기가 아니라 한 천년기를 넘어서게 될' (요한 바오로 2세 교서 '제3천년기' 33항) , 서기 2000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서기 1년부터 시작해 2천년간을 끝내고, 새로운 1천년기를 맞이하려는 순간인 것이다. 이때야말로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인 시간, 내 인생에서 단 한번의 기회일는지 모른다.

바로 삶을 전면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때가 지금이다.

*** 새 삶 위한 마지막 기회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고 예수는 유다인이며 지식인인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선언한다 (요한복음 3장 1~7절 참조) .새로 태어난다 함은 철학적이고 근본적이며 영적인 가치관으로 인도된 삶으로의 재생이다.

총체적 부패로부터의 진정한 탈출을 가능케 하는 삶의 변화가 그것이다.

2000년은 50년 단위의 희년법 (禧年法)에 따라 맞이하게 되는 대희년이기도 하다.

하느님 뜻과는 다르게 잘못 살아온 삶을 하느님이 본래 인간에게 베푼 인간의 삶과 재산, 그리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된 상태로 되돌리는, 기쁨의 해로 선포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올 대희년에 '새날 새삶 운동' 을 통해 이 시대와 사회에 변화해야 할 삶을 권고하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2000년을 향해 변화하지 않고서는 새로 날 수 없고, 새로 나지 않고서는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는 엄중한 명령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장덕필 가톨릭 중앙의료원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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