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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한국경제와 금융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요즘 번져가는 노조파업은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2차년에 접어들면서 점차 해이해지고 있는 사회기강과 되살아나는 집단이기주의의 표징 (表徵) 이라 하겠다.

지난해초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허리띠를 동여매고 금모으기 운동 등에 동참하면서 뭔가 우리 민족 전래의 미덕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1년이 채 못돼 사치수입품과 호화판소비가 다시 등장하고, 해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 해외여행자수는 지난해의 3배이상으로 불었으며 신축 아파트단지와 주식시장에는 투기성자금들이 몰려오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새 정부의 실력자와 고위공직자 집에서 돈뭉치가 쏟아져 나왔다는 한 절도범의 주장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특히 우려되는 것은 IMF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국제기구와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다분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감언 (甘言)에도 불구하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 (IMD) 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95년의 26위에서 계속 하락해 지난해에는 35위, 올해는 38위로 떨어져 중국.필리핀.태국.브라질.멕시코보다 처져 있는 형편이다.

이는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 (TI)가 지난해 가을에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 가 96년 27위에서 97년 34위, 98년 43위로 내리막길을 걸어 우리나라의 부패점수는 짐바브웨와 말라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등급이라는 발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난해말 전세계 50개국 연구기관 모임인 경제자유네트워크 (EFN)가 발표한 한국의 경제자유지수가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보다 훨씬 낮은 44위로 평가됐던 것과 연관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발표된 대우와 현대그룹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들은 중공업 등 제조업 중심의 선단식 (船團式) 경영이 IMF관리체제 아래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젠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존 차원에서의 감량경영과 효율성 위주의 사업선택이 불가피해졌다.

이러한 새로운 기업환경 속에서 앞으로 우리의 비교우위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21세기의 성장산업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하이테크 벤처산업과 금융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인 미국은 전체 고용인구의 80%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도 70%에 육박하고 있고 또 이 분야의 고용증가율도 다른 업종보다 훨씬 높아왔다.

그중에도 금융업, 특히 국제금융 분야는 우리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21세기 전략산업으로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이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금융부문의 구조개혁과 현대화를 완성한다면 서울.인천.영종도 신공항을 축으로 한 서울권에 동아시아의 국제금융센터를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홍콩은 97년 중국으로의 주권 이양 이후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고질적인 중국 금융계의 취약점 등이 점증하는 정치불안과 맞물리면서 국제금융센터로서의 활력소가 점차 약화돼가고 있어 상대적으로 싱가포르가 덕을 보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동아시아와 시간대 (Time Zone).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다는 약점이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금융업 분야의 고급 두뇌형 고용효과와 선진금융기법 도입이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대적인 서비스 업종, 즉 호텔.관광.요식업, 법률.회계.국세컨설팅 분야, 항공.우편.통신업, 보험.투자자문.지주회사 등의 업종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복합적 경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자면 서울권의 국제금융센터가 카리브해의 버뮤다.케이만군도.안티구아 같은 조세피난처 (Tax Haven) 형태로서가 아니라 뉴욕.런던.싱가포르.홍콩처럼 명실공히 총체적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해야 21세기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카리브해식의 국제금융센터는 소위 국제 핫 머니의 세탁장소로 쓰여지기도 해 한국의 대외이미지에도 부정적이고 또 주로 '우편사서함만 있는 알맹이 없는 은행지점' 들이나 회계센터로만 역할해 실질적인 고용효과도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제주도는 결국 카리브해식의 조세피난처 역할 이상으로는 성장할 수 없을 것이므로 정부는 제주도에 21세기 국제금융센터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또 부산에 정치논리로 설립키로 한 선물거래소를 서울권으로 이전하는 등 서울권 한 지역에 명실상부한 국제금융센터를 집중 육성해야 할 것이다.

朴允植 美조지워싱턴대 국제경영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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