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중훈회장 퇴진' 청와대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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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는 대한항공의 일부 경영진 교체 결정을 일단 수용했다.

22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경남 방문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는 "그 정도면 된다" 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조양호 사장보다 조중훈 회장이 그동안 모든 것을 다해왔다" 고 수용이유를 설명했다.

조중훈 회장 퇴진에 의미를 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공식논평은 상당히 유보적이다.

박지원 (朴智元) 대변인은 "대한항공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 이라고 밝혔다.

강봉균 (康奉均) 경제수석의 논평은 보다 유보적이다.

과학적 경영체제 전환을 정부가 요구했던 만큼 실질적으로 바뀌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대한항공이 그쯤에서 끝났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경고 메시지도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게 대한항공이 청와대 요구를 전부 수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康수석은 하루전만 해도 趙회장 부자 (父子) 의 동반퇴진을 거의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조중훈 회장이 퇴진한다던데" 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양호 사장도 함께 해야 되는 것 아니냐" 고 반문했었다.

그는 국민정서를 명분으로 내걸면서 "국민이 대한항공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조양호 사장의 회장 승진에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시장경제원칙 침해' 라며 이번 사태를 예민하게 주시하는 재계의 시각을 고려한 듯하다.

물론 조양호 사장이 사장직에서는 물러난 점도 감안한 것이다.

사실 청와대로선 대한항공의 조치를 전면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

대한항공으로선 회장의 퇴진이란 성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정 전반에 대한 리더십을 새롭게 다지려는 金대통령의 구상을 뒷받침해 주었다.

재계는 물론 다른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다고 보는 청와대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손을 놓는 것은 아니다.

계속 목을 쥐고 가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회장의 퇴진은 도의적 책임을 물은 것이고 행정적 책임추궁 절차는 따로 있다며 대한항공의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태세다.

청와대가 22일 대통령 수행비서관과 기자들의 부산행 비행기 예약을 대한항공에서 아시아나로 부랴부랴 바꾼 것도 음미할 만한 대목. 어찌됐든 청와대로선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

청와대는 여기서 조성된 기세를 타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강도높은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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