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야구보다 지지 않는 야구가 강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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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16면

두 팀 모두에 중요한 경기였다. 지난 9일 광주 KIA와 SK의 경기. 시즌 1위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던 KIA가 2위 SK에 2경기 차로 쫓기고 있었다. 두 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이었다. 승부사 김성근 SK 감독은 9일 경기를 ‘올해의 승부’로 작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1회부터 투수를 바꾸는 강수를 뒀다. 그리고 이겼다. SK는 KIA를 1경기 차로 압박했고 남은 시즌 1위 경쟁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26>

이날 SK 승리의 주인공은 정근우였다. 그는 0-1로 뒤지던 6회 초 역전 2점 홈런을 때렸다. 역전 결승 홈런 하나만으로 수훈갑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오히려 그 홈런에 가려 빛나지 못한, 그의 수비에서 김성근 야구의 진수를 보았다. 그 흐름에서 SK 야구의 정신을 보았다. 그건 어떤 승부에서든 이기기 위해서는 지지 않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누가 더 철저히 준비하느냐가 곧 경쟁력이라는 교훈이었다.

이날 정근우는 6회 결승 홈런을 때린 3번 타자이기 전에 KIA의 리드를 1점으로 묶어 놓은 2루수였다. 먼저 KIA가 1-0으로 앞선 3회 말. 무사 1루에서 나지완이 3루 선상 쪽 땅볼을 때렸을 때 SK 최정-정근우는 그 타구를 병살플레이로 연결했다. 그때 최정의 송구를 받아 2루를 밟고 공을 꺼내 1루로 던지는 정근우의 동작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였다. 그는 빠르고 강한, 그리고 정확한 송구로 추가 실점의 위기를 차단했다.

KIA는 1-0으로 앞선 5회 말 도망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선두 안치홍의 3루타로 무사 3루. 추가점은 곧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 놓을 모멘텀이었다. 이현곤의 강한 타구가 나왔다. 그러나 정근우가 그 길목을 지켰다. 쇼트 바운드로 그 타구를 잡아낸 정근우는 3루 주자를 묶어 놓고 이현곤을 아웃시켰다. 주자가 홈에 뛰어들 여지는 없었다.

계속된 1사 3루. 타자는 이용규였다. 왼쪽 타석에 선 이용규의 콘택트 능력과 빠른 발을 감안할 때 웬만한 땅볼이면 추가점이었다. 이용규의 타구는 느렸다. 3루 주자 안치홍이 홈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근우가 그 길목에 있었다. 정근우는 공을 잡는 동작과 홈에 던지는 동작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달인’이 떡을 써는 스피드? 그리고 포수의 눈높이로 타자가 뛰어드는 길목에 정확히 던졌다. 안치홍은 홈에서 태그아웃됐고 KIA는 도망가지 못했다. 더불어 SK는 추격의 반전을 맞이했다. 6회 초 정근우의 역전 홈런이 나왔다.

정근우는 3-1로 앞선 6회 말, 2사 3루의 위기에서 홍세완의 내야 안타성 타구를 또 한번 좋은 수비로 막아냈다. 이 네 번의 수비는 곧 ‘이기는 야구’에 앞선 ‘지지 않는 야구’였다.

김성근 감독은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자신의 야구를 ‘지지 않는 야구’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는 지지 않는 야구를 한다. 이기는 야구와 지지 않는 야구가 뭐가 다르냐고? 상대의 실수로 이길 수도 있다. 우리 팀이 엉망으로 못해도, 상대가 더 엉망이면 이길 수 있다. 지지 않는 야구는 실수 같은 것으로 상대에 승리를 내주지 않는다. (중간에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지지 않는 야구를 공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결과보다 과정에 강한 SK 야구가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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