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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파괴의 천년, 조화의 새천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오늘은 29번째 맞는 지구의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안에서 유조선의 기름유출로 해양 및 연안생태계의 심각한 환경파괴가 사회문제가 되자 1970년 상원의원인 넬슨에 의해 주창된 이래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지구온난화, 엘니뇨.라니냐 같은 어려운 기상용어가 초등학생들도 언급할 정도로 보편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는 30년만에 한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칭하는 기상이변이 그만큼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98년은 지구환경 측면에서 미증유의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인류가 기온을 측정한 이래 가장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했고 또 가공할 만한 기상재해를 겪은 해였기도 하다.

80년대 10년간의 총 기상재해액은 5백50억달러였고 1년 단위로 볼 때 그동안 최고였던 96년은 6백억달러였다.

하지만 98년의 피해규모는 간단히 9백억달러를 초과한다.

3만2천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됐고 3억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난해의 3대 재해로는 중국 양쯔강의 대홍수, 중미를 강타한 허리케인 '미치' , 방글라데시의 대홍수를 들 수 있다.

얼핏 보아도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천재 (天災) 로 분류되기 쉽다.

하지만 과연 인재 (人災) 는 없었을까. 양쯔강 주변의 산림은 최근 수십년간 85%가 훼손됐고 방글라데시의 경우 히말라야 상류지역의 벌채가 심각하게 진행된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빈번해지는 기상이변은 많은 비를 퍼붓고 나무가 없는 언덕과 집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비록 폭풍우 자체의 발생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무분별한 산림훼손 등 지구의 자본을 손대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많은 손실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적인 환경연구소인 월드워치에서도 98년의 주요 재해를 천재도, 인재도 아닌 비자연적 재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상재해는 계속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특히 지난해 8월초 폭우는 19일만에 1조3천억원의 피해를 주고 말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10년간 세계 최고였던 에너지소비증가율, 아직도 7조원을 상회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우리의 성장 및 소비패턴이 어땠는지를, 앞으로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97%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식량도 쌀을 제외하면 95%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의 걱정은 국제수지의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나라전체의 구조조정에까지 미쳐야 한다.

실제로 에너지 등 지구자본의 고갈은 피할 수 없고 또 기상이변.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문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직까지 대체에너지.대체식량이란 단어에 안주하기에는 기술.경제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턱없이 많기 때문이다.

지구환경의 위기가 바로 우리의 위기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네 개발과 소비패턴을 포함한 삶의 양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제도와 조직을 통한 대응체계가 하루빨리 수립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천년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의 방향은 지구와의 조화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서구사회의 표준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선 우주적 표준 (宇宙的 標準.cosmic standard) 이다.

우리의 지속 가능성은 자연자본의 잠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소득으로 살아갈 때 보장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되겠다.

황진택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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