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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 보완 기대” vs. “얼굴마담 될까봐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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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4년 한나라당 이혜훈(45) 의원이 정계 입문을 고민할 때의 일이다. 늘 그랬듯 선생님 정운찬(63) 국무총리 내정자를 찾아갔다. 선생님의 답변은 무미건조했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스승은 말을 아꼈지만 음지에선 그를 도왔다. 대중목욕탕에서 “이혜훈 찍어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책상머리만 지키고 있는 것은 학자가 아니다.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는 그의 학자관이 읽힌다. 정 내정자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도 사실 현실 참여를 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내정자는 정작 정치 참여만큼은 망설였다. 정치적으로 주판알을 튕겼는지 아니면 학자로서 권위를 지키고 싶었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러던 그가 이명박 정부의 입각 제의를 덥석 수락했다. 당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핵심은 ‘도대체 왜’다. 다른 정부의 제안은 번번이 거절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손을 잡은 이유가 뭐냐는 거다. 정 내정자는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케인스 학파다. MB노믹스의 근간인 신자유주의와는 밑바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규제완화, 감세 무엇보다 금산분리 완화 정책은 정 내정자의 경제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 의원과 동기인 우제창(46) 민주당 의원은 “선생님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보여 온 소신과 다른 행동을 보인 것에 대한 비판이다. 우 의원은 또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셨던 모든 말씀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론도 물론 있다. ‘정운찬 사단’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울시립대 윤창현(49ㆍ 경영학) 교수는 “감세든 증세든, 4대강 사업을 비판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취사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며 “재야 학자로서 한 말을 정부에 가서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의 말이 옳다 해도 정 내정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걸고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국정 기조 ‘서민중도 노선’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놨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수제자인 홍익대 전성인(50ㆍ경제학) 교수는 “선생님이 경제 철학을 펼치러 내각에 들어간 게 아닐 것”이라며 “현 정부의 노선 변화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기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MB정부는 현재 버전 2.0으로 전환됐다. 이 대통령이 올 6월 ‘중도실용 및 친서민 국정운용’을 선포한 이후다. 겉으론 버전 1.0 정부와 분명히 다르다. 그럼 정 내정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 내정자의 또 다른 수제자로 꼽히는 한성대 김상조(47ㆍ무역학) 교수는 비관적이다.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이 선생님에게 얼마나 독자적 역할을 부여하느냐, 그리고 선생님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지만 결코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선생님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혜훈 의원도 “만약 선생님의 생각과 역할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한다면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며 “그러면 선생님의 행보가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 상세한 기사는 14일 발매되는 이코노미스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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