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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95.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제8장 도둑

시내 변두리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 앉아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운 그들은 해 돋기 전에 다시 출발하여 설악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들이 접촉할 구매자는 오색 못미처에 있는 약초가게였다. 차를 가게 근처 공한지에 세워 둔 그들은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 받았던 구매자를 만났다. 목소리가 걸걸한 오십대의 상인이었다.

새벽잠에서 깨어난 상인은 아직 눈곱도 떼지 않았으나 거래는 신속하고 분명하게 이뤄졌다. 다섯 개의 상자 중에서 한 개의 뚜껑을 열어본 상인은 나머지는 확인도 않고 두 사람을 가게로 이끌었다.

"양양시내에서 잤다면 아침식사들 못했겄구만. 해장국이나 들고 가시오." 가게 주인은 물론 상자 속의 물건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운송경로를 통해 오색까지 도착한 것인가를 거울 속 들여다 보듯 꿰고 있었다.

벌써 십수년째 이 일에 종사하고 있는 상인이 가진 상품의 판별력은 한 개의 상자를 열어 보아도 충분히 알아챌 만했다.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들여온 물건인가를 묻지도 않았고, 묻지 않는 것을 시시콜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대금은 현찰이었다. 그들의 머리속에서 부풀릴 대로 부풀려 있던 금액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안면도에서 그대로 되넘기는 방법을 선택했더라면, 기대할 수 없었던 금액이 손에 쥐어진 것만은 틀림없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허겁지겁 시래기 해장국을 퍼먹고 있는데, 방귀를 붕 뀌던 상인이 다가와 앉았다.

"운송 도중에 검문을 당하지 앉았소?" "서너 번 당했지요. 그래도 채소를 싣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받을 일이 없었습니더. " "물건은 더 받을 수 있겠소?" "딱이 날짜를 기약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에 갖다 드릴 수 있겠습니더. "

"딴 거래처를 물색하지 않았소?" "깨놓고 말씀드리면, 우리가 이 방면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처지들이 아이겠습니껴. 물건도 성질이 그런데, 달리 거래처를 수소문할 처지가 되겠습니껴. "

"앞으로 나하고만 거래를 합시다. 떠벌리고 다니면서 소문낼 물건도 못되고…. " "여부가 있겠습니껴. 우리는 형님만 믿겠습니더. " "쓸데없이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을 필요는 없어요. 물건이 들어왔을 때, 전화 한 통화면 돼요. 내 말 알아 듣겠소? 단골을 트자고 더 얹어 준 것은 알고들 있겠지요?"

문득 숟가락을 내려놓은 봉환은 소스라쳐 조아렸다. 서둘러 가게를 나서는 두 사람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서해에서 건네받은 물건을 강원도의 휴전선 부근에서 포획한 물건으로 둔갑시킨 한 가지 수고로 곱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꿈처럼 믿어지지 않았으나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운전석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고 현금을 다시 헤아려 보기까지 하였다. 문득 눈길이 마주친 두 사람은 실성한 것처럼 낄낄거렸다.

"바다 밑구멍을 갈퀴로 채 썰듯이 긁어 보았자, 어망에 걸려오는 것은 조개 아닌 불가사리뿐인데, 어망 한 번 던지지 않고 건네받은 물건으로 곱장사에 꿩 먹고 알 먹었네, 우리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 정말. "

"안되면 어쨀라꼬요? 저질러 놓은 일인데, 죽기 아니면 까무래치기 아입니껴. " 그들은 곧장 한계령을 넘었다. 안면도 백사장 포구에 도착한 것은 이튿날이었다. 백사장 포구를 출발해 돌아오기까지는 불과 이틀간의 노정이었다. 물론 두 여자들은 그들의 몰지각한 행각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무사히 치르고 돌아온 것만 다행으로 알았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못되어 조씨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섰다판으로 달려간 것이 틀림없었다. 봉환은 자기 몫으로 분배된 돈을 희숙에게 맡겼다.

그것이 그녀를 겨냥한 신뢰와 환심을 붙잡아 두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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