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히말라야 등반기- KBS2 특집다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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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러리는 "저기 산이 있기에 올라간다" 고 말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오현묵 (30) 씨는 "산에게 나를 보여주러 간다" 고 되뇌인다.

히말라야 고봉인 아일랜드 피크 (해발 6천1백60m) 등정을 앞두고 텐트 속에서 소형 녹음기에 각오를 싣는 그의 모습이 비장하다.

그가 아일랜드 피크 정상의 설원 (雪原)에 종이학을 흩뿌렸다. 지난해 3월30일의 일이다. 고소증으로 결국 정상까지 합류하지 못한 한상훈 (15) 군의 희망을 대신 실어보낸다.

히말라야로 떠나기 직전 한군의 장애인 친구들이 성공을 기원하며 고이고이 접어온 종이학이다. 한군은 다른 어떤 물건보다 종이학을 잊지않고 챙겼었는데. 그리고 정복의 기쁨에 환호하는 대원들을 배경으로 성우의 말이 깔린다.

"그들은 안다. 이 도전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 IMF로 한창 시달리던 지난해 봄 우리들 마음을 훈훈한 감동으로 채워줬던 시각 장애인 3명의 히말라야 등반기. 그 역경과 고난의 세계 최초 기록이 다큐멘터리로 다시 찾아왔다.

KBS2가 19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2부작 특집다큐로 꾸민 '벽을 넘어서' (밤 8시5분) .독립제작사인 TNT프로덕션 (연출 김용수) 이 만든 작품이다.

6개월에 걸친 대원들의 훈련과정과 힘겨운 등반과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화면에 잡아냈다. 30분 짜리 녹화 테이프 2백74개가 들어간 대장정. 히말라야 8천m고지를 10개나 오른 전문산악인 박영석씨의 지도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대원들의 땀과 눈물이 1백분 동안 메아리친다.

훈련에 참여한 대원은 모두 4명. 조직폭력배 시절 패싸움하다 시력을 잃은 김동암 (43) 씨, 포항공대 대학원 1년 때 베체트 병으로 갑자기 실명한 오현묵씨, 어릴 적 홍역으로 오른쪽 눈을 잃은 한상훈군, 그리고 평생 앵벌이를 하다 새롭게 자신을 찾아나선 황봉모 (42) 씨. 그러나 황씨는 국내훈련 도중 쌓인 스트레스에 술을 끊지 못해 결국 히말라야 등반대에서 탈락하고 만다.

다큐는 지하철역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제주도 한라산 훈련장으로 가기 위한 첫 관문이다. 지하철 승차권을 제대로 넣지못하는 부분에선 측은한 느낌이 절로 든다. 서울역 도착 시간이 늦어 예정했던 무궁화호 대신 새마을호 열차를 타게돼 '호화판' 훈련은 거부하겠다며 심술을 부리는 황씨의 모습은 "정말 저 팀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자아낸다.

이어지는 한라산.북한산.설악산에서의 체력단련 훈련, 그리고 한발짝 한발짝을 떼기도 숨가쁘기 그지없는 현지 등반장면. 설악산 정상 대청봉 이정표에 새겨진 글자를 손을 더듬으며 확인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아일랜드 피크 정복 순간보다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역시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진실이 새롭게 각인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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