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관공서 인터넷홈페이지 '암행어사' 역할 톡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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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화조를 청소하고 난 뒤 웃돈 5천원을 얹어 달랍니다. 또 환경미화원도 다달이 찾아와 사례비를 요구합니다. " 吳모양은 지난 2월 26일 서울 서초구청 인터넷 홈페이지 '구민의 소리' 난에 이같은 편지를 띄웠다.

놀란 구청 청소행정과는 즉시 관련 직원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재발시 강제 퇴직시킨다" 는 단서를 달고 '경고' 조치를 내렸다.

구청 위광호 계장은 "요즘은 인터넷이 감사나 감찰보다 더 무섭다" 고 말했다.

각 관공서가 경쟁적으로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가 '힘 없고 빽 없는' 민초 (民草) 들의 신문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신분에 관계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는 개방성을 무기로 '귀 막고 눈 멀고 싶은' 공무원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공무원 감시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지난 1월 새벽 서울 숭실대 입구에서 회전위반으로 단속된 조영수 (曺永洙.34.회사원) 씨는 스티커를 발부한다며 10분 이상 기다리게 하고 담배꽁초까지 함부로 버리는 경찰관에 항의하다 오히려 협박을 받고는 경찰청 홈페이지에 이같은 사실을 띄웠다.

서울경찰청 지시에 따라 진행된 조사에서 담당 경찰관은 시말서를 제출했고 인사고과에서도 감점을 받았다.

趙씨는 "직접 찾아가 민원을 접수시켰더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 K대 3학년 梁모군도 동사무소 아르바이트 담당 직원의 급여 횡령 의혹을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게재해 관할 구청 감사과의 감사를 이끌어냈다.

인터넷 고발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데도 한 몫하고 있다.

김유영 (여) 씨는 지난 1월 여성의 응시를 제한한 정보통신교육원 무료교육생 모집 공고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시정 요구해 정보통신부가 3일만에 정정 공고를 내게 만들었다.

시민단체인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속 이득형 (35.영어강사) 씨는 서울시.마포구.강서구 등의 공무원 점심시간을 오후 12시 50분으로 옮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토요일 오전 근무자는 오후 1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데도 오전 11시30분이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비현실적인 도로 최고속도 상향조정 (규제개혁위원회) ▶7.9급 지방공무원 시험에서의 거주지 제한 철폐 및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영문표기 통일 (서울시) ▶시흥대로 버스 전용차선의 변경 (경찰청) 등도 인터넷의 힘으로 얻어진 결과들이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자의 활발한 감시활동에 비하면 담당 공무원들의 반응은 286컴퓨터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무원 비리 등 외부로 알려지기 껄끄러운 사안에 대해서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지만 정책 시정.건의 등에 대해서는 몇 번씩 메일을 띄워야 겨우 형식적인 답변을 얻는 경우가 많다.

또 대통령이나 장관.시장 등 기관장에게 보낸 편지는 내용조차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담당하고 있는 홍세표 (洪世杓) 계장은 "모든 사이트를 개방하지 않은 것은 민원인들의 신분 보호 때문" 이라고 밝혔지만 조금만 배려한다면 기술적으로 해결가능하다는게 인터넷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참여연대 이태호 (李泰鎬) 시민감시국장은 "약자에 유달리 강한 관료조직을 견제하는데 인터넷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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