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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나가는 세계화, 들이는 세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얼마전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한국판) 는 한국의 세계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한 적이 있었다.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 정부는 밖으로 나가는 외부지향적 세계화를 추구한데 반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정부는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는 내부지향적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

한국경제가 IMF관리체제로 들어간 이후 60%가 넘었던 상환기간 1년 미만의 단기외채를 21%로 줄이고 외채를 직접투자로 전환시켜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선 한국기업의 해외진출만을 지향했던 과거의 세계화 전략과는 달리 외국기업을 국내로 유치하는 세계화 전략은 어쩌면 필요 불가결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나치게 외부지향적인 세계화나 지나치게 내부지향적인 세계화는 지양돼야 하고 양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세계화로 승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유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겐이치 (大前硏一) 는 한국이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한국의 대기업들이 구조조정후 약화되는 경영력. 기술력. 생산력. 자금력. 마케팅력. 국제경영력 등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회복. 강화시킬 것이며 또 구조조정 이후 한국경제를 이끌어나갈 경제주체세력들이 형성되지 못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하다고 경고한 것은 음미해 볼 만하다.

IMF관리체제를 초래한 일부 원인들을 제공했던 대기업들의 잘못된 경영관행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흑백논리와 같은 2분법에 의해 기업의 다각화는 무조건 다 나쁘고 1~2개의 전문업종 중심으로 전문화 지향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부당내부거래, 상호자금지원 등 불공정거래 행위와 탈세만 막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전문화 = 경쟁력 강화이고 다각화 = 비효율화 라는 등식은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주장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전문화의 큰 약점은 위험분산이 곤란하다는 점이다.

다각화에 따른 병폐를 막기 위해서는 조세.상속세 등 법으로 부 (富) 의 집중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필요하다.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인 미국의 GE는 81년부터 96년까지 15년간 구조조정을 단행해 TV. 소형가전제품. 에어컨. 라디오방송사업 등 총 1백20억달러 규모의 2백32개 사업부문을 매각 처분한데 반해 같은 기간에 보험.금융.방송 등 서비스분야, 의료.영상.핵자기 사업 등 총 2백60억달러 규모의 3백38개 사업체를 인수했다.

97년 1년간 GE가 거둔 경영성과를 구조조정을 시작하던 81년의 성과와 비교해보면 GE의 매출은 3배, 수익은 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GE의 성공요인은 쇠퇴산업을 빨리 정리하고 성장산업중심으로 다각화중심의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꿔 말하면 수개업종 중심의 무조건적인 업종전문화 전략을 지양한 까닭이었다.

전문화에 승부를 걸 만한 핵심적인 기술경쟁력이 없거나 취약한 상태에서 1~2개 업종에만 매달리면 위험분산이 안돼 세계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誌)가 아시아 경제위기와 관련해서 신흥시장 (emerging market)에서는 대기업 (한국의 재벌기업) 이 전문화 된 전문기업보다 경쟁력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보도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회계투명성 (accounting transparency) 을 높이고 족벌경영.연고주의 경영을 개선하면 아시아의 재벌들이 갖고 있는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다고 진단한 이코노미스트의 논평은 대기업의 업종 전문화가 만능약이 아님을 지적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비전있는 기업' (visionary company) 으로 평가받은 일본 소니 (SONY) 의 구조조정은 우리 한국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소니사는 TV.냉장고 같은 재래식 가전제품으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하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SCE)' 사를 중심으로 차세대 플레이 스테이션을 핵심으로 하는 네트워크형 디지털 가전시장을 겨냥한 다각화 전략을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1천2백억엔의 대규모 반도체 설비투자계획을 발표한 소니사는 최첨단 기술로 디지털 홈 네트워크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으로 '비전있는 최우수기업' 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이제 21세기의 경영은 아날로그 경영대신 디지털 경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세계시장 지향적인 세계화와 외국기업 국내유치와 같은 세계화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양자 동시 진행적인 세계화 전략을 추구해 나가야 되고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김동기 고려대경영대교수 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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