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패방지위' 수순에 문제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2일 국무조정실은 국무총리와 민간인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기관 장관과 민간인 등 20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부패방지정책위원회' 라는 범국가적 반부패 기구를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설치해 국가 사정기능을 총괄조정케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일반에 알려졌다.

옥상옥 (屋上屋) 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발상은 재고돼야 한다.

다음에서 보듯 기본 수순이 어긋나 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첫째, 기구 신설을 논하기에 앞서 이 정부가 진정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순수한 의지가 있음이 말로써가 아니라 실체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고 시민단체들이 반부패운동에 동참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집권과 함께 부정부패 추방의 요체인 투명성 확보의 핵심수단에 해당하는 금융실명제는 파기하고 부패의 온상인 무기명 채권제도를 부활시켰다.

게다가 반부패 정책의 또 다른 요체인 부패척결의 공정성, 특히 우리나라 부정부패의 근원인 정치권 부패척결에서의 성역 제거를 위한 가장 확실한 제도적 수단이요, 현 집권당이 야당시절 그렇게도 줄기차게 주장하던 특별검사제도를 집권 후에 보니 잘못 생각했었던 것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말 한마디로 물건너간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곤, 시민단체들의 계속적인 특별검사제 도입 요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부패척결을 위한 이런 핵심적인 제도들을 도입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반부패 총괄기구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부패로부터의 자유를 소망하는 수많은 국민들과 시민단체 종사자들의 눈에는 그저 그동안 정권 변동기에 늘 있어 왔던 국무총리 산하 사정기구와 검찰, 감사원 등 사정관련 권력기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헤게모니 쟁탈전의 또다른 시작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다.

둘째, 부패통제활동 역시 정부의 다른 정책활동처럼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나라 경제도 힘든 이 때 정책 당국자들은 기구 신설처럼 돈많이 드는 발상에 앞서 있는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손질해 잘 지킴으로써 기구 신설 방법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더욱 비용효과적인 부패통제 방법부터 강구해야 하는 것이 정수순이다.

그것은 바로 정보공개법과 행정절차법을 제도의 본래 뜻에 맞게 수선해 잘 지키는 일이다.

이것만 제대로 되어도 부정부패의 80%이상이 잡히게 된다는 것이 부패척결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의 경험이다.

차제에 정책 당국자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부정부패가 안 잡힌 것이 과연 기구상의 문제 때문이었나를 실로 진솔하게 짚어 보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처럼 공무원들이 수많은 사정 및 감사기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도 그리 흔치 않다.

부패척결의 사령탑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통령 비서실의 사정수석.민정수석이 바로 그런 일을 하도록 돼 있었고,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셋째, 국무조정실의 발표에 앞서 감사원.검찰과의 사전 조율 수순이 밟아졌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국무조정실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단지 사정관련 총괄조정기능을 부패방지정책위원회 안처럼 국무조정실에 주는 안이 제1안으로, 감사원에 주는 안이 제2안, 검찰에 주는 안이 제3안으로서 각기 병렬적으로 제시됐고, 제1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국무조정실 고위관계자의 이야기만 언론에 보도됐을 뿐이다. )

이번 방안처럼 자신들의 밥그릇이 '도 아니면 모' 식으로 걸린 사안과 관련해 사정기관들이 과거에 보인 행태와 생리를 고려할 때, 이처럼 사전 조율의 수순이 빠진 상태에서의 반부패 기구 신설 논의는 한낱 해프닝으로 그치게 될 공산이 크다.

만일 그렇게 되는 경우, 자칫 이번 정책사안 역시 최근 정부가 연속해서 보였던 사전의 정책조정 부실로 인한 국정 난맥상의 또 다른 사례를 추가하게 되는 것이고,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무조정실 스스로도 정책조정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는 점이다.

국무조정실을 비롯한 정책 당국자들의 신중.치밀하고도 멀리 보는 정책기획력을 기대한다.

황성돈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