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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구조조정 태풍] 뒤따르는 고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일본의 유력 석유회사인 코스모 석유의 오카베 케이이치로 (岡部敬一郎) 사장은 요즘 인원 40%감원.임금 10%삭감을 확정, 전국 지점을 순회하며 종업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고개를 떨구는 종업원들 앞에서 그는 "다음에 사람을 자를 때는 바로 회사문을 닫을 때" 라며 눈시울을 붉힌다고 한다.

굴지의 철도 그룹인 오다큐 (小田急) 의 도카이 (東海) 자동차는 4월1일자로 전 사원을 일시 해고하고 그 중 일부만 재고용했다. 물론 '운좋게' 재고용된 직원도 임금이 20%깎였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일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은 일본인들에게는 남다르다. 일본에서 그동안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 는 하나의 성역 (聖域) 이었다. 그런데 그 성역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현재 4.6% (2월) 로 사상 최고다. 연말에는 5.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업자수는 3백13만명. 버블경제였던 80년대 후반의 약 2배에 달한다.

근로자들의 소비 지출도 지난해에 비해 4.1%나 감소했다. 당연히 유통업체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사회적 부작용도 심상치 않다. 지난 2월에는 비자발적 실업자가 96만명이었던 반면 자발적 실업자가 1백13만명이나 됐다.

"모든 게 싫어졌다" 며 대도시 노숙자로 전락하는 이들의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임금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다이와 (大和) 은행이 보너스를 30% 삭감하는 등 주요 기업의 보너스 수준은 전년도를 형편없이 밑돌았다. 샐러리맨의 정기급여도 지난 2월까지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반발은 우리나라처럼 많지는 않다. "임금 상승 운운할 처지가 아니며 희생과 고통에 적응해야 된다" 며 일본인 특유의 공감대를 형성한 때문이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춘투(春鬪.노사협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경영자단체연맹 (닛케이렌) 은 '임금동결' 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렌고) 는 '기본급 1%인상과 고용안정' 을 제시하고 있지만, 렌고는 사실상 1%인상안을 접고 고용안정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임금상승률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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