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대체에너지의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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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시인 김진경은 ‘밥도 많이 먹으면 죽지/ 치사량이 큰 독인 셈’이라면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빈곤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일 거라고’ 예언한다. 현대인은 에너지를 ‘많이 가졌기’보다 너무 많이 쓴다. 지구 문명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우주가 수십 억 년 동안 비축해 놓은 화석 에너지를 우리가 너무 빨리 소비하고 있어서다.

화석 에너지에 관한 한 지구는 철저하게 닫힌계이다. 이 점은 핵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태양만이 지구에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우리가 태양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건 태양 에너지의 청정성보다는 닫힌계인 지구가 태양 빛 앞에서만 열린계가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난제를 혹시 태양 빛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지구가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인구가 120억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이 정도의 인구라면 편안히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인구학자들은 인구가 120억 명이 되는 시기를 2060년쯤으로 잡는다. 지구에서 바다·사막·산악, 남극과 북극 등 일부 악조건의 지역을 제외하고 남은 면적에 120억 명이 고르게 분산돼 산다면, 한 사람당 약 20mX20m의 넓이를 차지할 수 있다. 이 면적에 태양은 600㎾의 빛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사람 한 명당 평균 에너지 소비율이 11.5㎾다. 이 값이 2060년쯤이면 20㎾로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30배를, 태양은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30이란 숫자는 허상임을 알아야 한다. 태양 전지, 동력 장치와 가전제품 등의 에너지 효율, 날씨의 일일 및 계절 변화 등을 고려하면 30배의 가상 위력이 당장 3배 이하로 떨어진다. 필요한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공급받으려면 각자가 활동할 수 있는 면적의 3분의 1을 태양전지 판으로 덮어 놓아야 한다. 한편 광전지 판에 떨어지는 태양광의 상당 부분은 가시광 형태로 우주 공간에 다시 방출될 것이다. 태양광의 재방출은 지상의 온도를 낮춰주는 방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를 온통 태양전지 판으로 덮을 수 없는 노릇이다. 또 그러한 시설이 생태 환경에 가져올 악영향은 불을 보듯 뻔하다. 태양 에너지가 화석 내지 핵 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요즘 풍력과 조력이 화석 에너지의 대체 수단으로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지구 문명에 필요한 에너지의 상당수를 풍력과 조력으로 해결하려면 우리는 생태 환경에 미칠 악영향도 같이 걱정해야 한다. 산허리마다 늘어서게 될 풍력 발전기들과 해안을 차지하고 있을 대규모 조력 발전 시설이 대기와 바닷물의 흐름을 온통 바꿔놓을 것이다. 그러므로 풍력이나 조력도 결코 핵이나 화석의 대안은 될 수 없다. 겨우 보조 수단일 뿐이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덜 사용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동력 장치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줌으로써 에너지의 절대 소비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에너지 효율의 개선이 에너지 소비의 욕구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교통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현대인의 미덕은 이제 소비가 아니라 절제임을 알아야 한다.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 물리천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