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Q]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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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08:이발소 장면. 김형사 (장동건) 와 우형사 (박중훈)가 이곳에 숨어있는 마약중독자 엄현수 (이호성) 를 덮치려고 밖에서 서성거린다. 유유자적 의자에 누워 면도를 기다리는 현수.

먼저 김형사가 총대를 멘다. 스르르 문을 열고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는 김형사. 잔뜩 긴장된 눈초리지만 왠지 초년병 티가 난다. 낌새를 채지 않도록 현수와 등을 돌려 권총을 꺼내는데 허리춤에 찬 수갑이 현수 앞의 거울에 비친다.

"커트" .때맞춰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수갑에서 번쩍하고 빛이 나야지. 화면을 놀래킬 정도로 말야. " 일순 소품담당과 촬영기사가 긴장한다.

카메라 앵글을 다시 조정하고 '레디 액션'.

지난 2일 경기도 남양주시 서울 종합촬영소 제7스튜디오.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촬영 현장이다.

'인정사정…' 은 두뇌플레이와 변신술의 귀재인 장성민 (안성기) 과 이를 좇는 두 형사 (박중훈.장동건)가 펼치는 액션 추적극. '첫사랑' 등을 만든 이명세 감독의 메가폰을 잡았다.

"현란한 기교가 넘치는 할리우드나 오버액션이 지나친 홍콩영화와는 다른 '진짜 액션' 을 보여주고 싶다" .액션 영화에 첫 도전장을 낸 이감독의 각오. 그 '진짜 액션' 의 선봉에 안성기와 박중훈이 섰다.

역할은 기존 이미지를 깨는 파격. 안성기가 깡패로, 박중훈이 이를 추적하는 노련한 형사로 출연한다. 검술의 고수 장동건은 박중훈를 따르는 '새끼 형사'.

그러나 이날 촬영의 주인공은 '박.장 콤비' . " '게임의 법칙' 에서 보여줬던 비장하고 심각한 액션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건들건들한 코믹 연기도 이제 싫다. "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영락없는 범죄형 형사. 박중훈은 "3개월간 진짜 형사들과 동고동락하며 추적술을 익혔다" 며 재는 눈치다.

이때 평소 박중훈을 사부로 '모신다는' 장동건이 거든다. "그래도 현장에서 야수처럼 표변하는 '타고난 형사' 야말로 바로 접니다. " 얼마전 막을 내린 '연풍연가' 에서 고소영의 파트너로 인상적인 감성 연기를 펼친 장동건의 썰렁한 농담에 스태프들, 오랜만에 파안대소한다.

'인정사정…' 은 현재 70% 정도의 촬영을 마친 상태. 6월말 개봉 예정이다.

주역들의 변신 연기외에 감독 특유의 치밀한 미장센 (장면구성) 으로 벌써부터 주목을 받은 작품. 밀도있는 디테일로 '세트미학' 의 거장이라는 이감독은 이날도 '악명' 을 높였다.

난로위에서 끓고 있는 물동이의 수증기조차 맘에 안들면 될 때까지 반복. 두 커트를 찍는 데 무려 6시간동안 매달린 끝에 겨우 'OK사인' 을 냈다.

"그래도 막상 영화가 나오면 불만 투성입니다. " 호화 캐스트와 감독의 장인정신. 이런 두 요소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느냐, 그게 '인정사정…' 의 성패를 쥔 열쇠가 될 것같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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