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경민 복귀전 승리 … 못 이룬 꿈 올림픽 금 목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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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의 여왕’ 라경민(33·대교눈높이·사진)이 돌아왔다. 라경민은 9일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가을철 종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실업 단체전 복식에 나서 2005년 이후 4년 만에 실전 경기를 치렀다. 선수와 관계자 50여 명만이 지켜본 조촐한 복귀전이었지만 코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드롭샷과 절묘한 헤어핀은 전성기 모습 그대로였다. 라경민의 활약 속에 대교는 김천시청을 3-0으로 꺾었다.

라경민은 지금은 남편이 된 김동문(34)과 팀을 이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배드민턴 혼합복식의 전설로 군림했던 스타다. 김-라 조는 국제 경기 70연승, 14개 대회 연속 우승 등을 일궈냈고 2005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라경민은 2007년 2월까지 대교에서 코치를 맡다가 남편과 함께 캐나다 캘거리로 유학길에 오르며 코트를 떠났다.

그러나 라경민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이다. 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는 김동문과 적으로 만났다. 김동문-길영아조가 금메달을, 박주봉-라경민조가 은메달을 나눠가졌다. 함께 팀을 이뤄 출전한 2000년 시드니와 2004년 아테네에서는 8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올림픽 금메달의 한 때문일까. 라경민은 “한 번도 코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 한울(3), 딸 한비(1)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김동문 인터내셔널 배드민턴 아카데미’에서 캐나다 대표팀을 지도하며 꾸준히 운동을 해 왔다. 현역 복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올 3월 성한국 대교 감독이 라경민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전지훈련차 캐나다를 찾은 성 감독은 “다시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오랜 고민 끝에 라경민은 복귀를 결심했고 남편에게 의사를 전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뒤에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회유했다.

그러나 라경민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는 너무 늦을 것 같다. 애틀랜타 때 내 금메달 뺏어간 사람이 누구냐?”라며 김동문의 ‘약점’을 공략했다. 결국 남편이 항복했다. 김동문은 복귀전을 치르기 위해 귀국한 아내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캐나다에 남아 한울이를 혼자 돌보고 있다.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딸 한비는 엄마와 함께 귀국해 대회 중에는 외할머니가 맡아주기로 했다.

“감각은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며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한 라경민은 “전에는 주변의 기대와 승리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잠도 못 이룰 정도였어요.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닌데…이제는 즐기면서 하고 싶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화천=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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