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혜암 새 종정에 바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이번 불교 조계종의 새 종정 선출은 여느 때와 다른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해 가을 폭력이 난무한 종권분규로 한국 불교의 이미지가 국내외에서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그 결과는 '중이 싸우지 스님은 싸우지 않는다' 는 승단의 자조적 (自嘲的) 인 반성과 함께 1950년대 정화불사 이후 누적된 병폐를 청산할 제2의 불교정화가 절실하다는 불교계 안팎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하나는 2000년대를 향하는 20세기 말의 엄청난 변화와 개혁에 적응할 수 있는 변신을 앞서 이끌 종단의 탁월한 지도력이 갈망되는 시점이다. 이처럼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현실은 마치 사활의 기로에 선듯 한 중대하고도 절박한 상황이다.

종단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인 신임 혜암종정은 우선 종단의 패거리 파당 의식과 해이한 기강을 바로 잡고 파초와 같은 덧 없는 육신의 욕정을 버리는 '불고파초지신 (不顧芭蕉之身)' 의 수행 가풍을 확립해야 한다.

사판 (事判) 의 측면에서는 어른다운 처신으로 사찰재정의 투명화, 보복적인 승려 징계의 실타래를 푸는 승단 화합조치등이 시급하다.

그리고 잦은 종권분규가 파생시킨 종단의 요직과 주지자리등을 전리품화 (戰利品化) 하는 폐단도 척결해야 한다.

한국 불교의 미래를 지향하는 중요 지표로는 인재불사.연구불사를 폭넓게 전개해 불교사상을 인류 보편사상으로 세계화 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우는 식의 불사에나 전념하는 불교로서 안주하는 시대는 지났다.

최근 불교사상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20세기 이후 인류문명을 이끌 이데올로기로서 새삼 조명되면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혜암종정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객 (禪客) 이다. 한국불교의 법통은 신라말 고려초 9개의 선종 사찰 (九山禪門) 이 개산된 이래 선종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특히 조계종은 동아시아 선불교의 정맥인 임제종 (臨濟宗)가풍을 잇고 있는 선종이다. 그래서 선승인 혜암선사의 종정 선출은 더욱 큰 기대를 모은다.

부디 그의 높은 법력이 깊은 산속에 떠오르는 달빛이 산새들을 놀라게 하듯이 혼탁한 오늘의 조계종단을 일깨워 주길 거듭 바란다.

이은윤 종교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