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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음반 '봄기지개'…시크릿 가든등 인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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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81년 겨울. 라디오를 듣던 팝팬들은 반복되는 경쾌한 손뼉리듬 위에 10초 간격으로 쏟아져 나오는 클래식 메들리 선율에 깜짝 놀랐다.

루이스 클락이 지휘한 런던 로얄 필의 '훅트 온 클래식' .클래식 명곡중 듣기 좋은 테마부분만 낚시하듯 건져 한 트랙에 최고 80곡까지 엮은 것이었다.

89년까지 17가지 시리즈로 이어진 '훅트 온…' 은 무려 8천만장 판매고를 기록했다. 클래식과 팝을 교차시킨 '크로스오버' 는 이를 기점으로 세계 대중음악의 중요 화두가 됐다.

몇 년 주기로 반복되는 팝, 클래식, 재즈간의 크로스오버 붐이 올 봄 국내에 다시 불고있다.

바람의 시작은 지난 달 영국 재즈가수 캐롤 키드의 팝 '웬 아이 드림' 이 영화 '쉬리' 열풍에 힘입어 히트하면서부터. 이어 애니 해슬럼의 '스틸 라이프' 가 한달에 1만4천장 넘는 짭짤한 히트를 기록하고 샤롯 처치.시크릿 가든.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계속 음반을 내며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스틸 라이프…' 는 '훅트 온…' 으로 재미를 본 루이스 클락이 한발 더 나가 팝가수가 클래식을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85년 시도한 음반.

록그룹 '르네상스' 의 여가수였던 해슬럼은 4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에다 '천상의 목소리' 란 극찬을 들은 청아한 보컬때문에 로열 필의 파트너로 뽑혔고 전세계적으로 3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는 그녀의 캐스팅이 적절했음을 입증했다.

1.2집 합쳐 국내에서만 30만장이 나간 뉴에이지 혼성듀오 시크릿 가든은 최근 3집 '다운 오브 어 뉴 센추리' 를 내놓았다. 지난달 29일 내한해 서울에 머무르고있는 이들은 3집도 10만장 판매를 자신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여성싱어가 켈틱적인 신비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현을 사용한 감미로운 선율은 국내 드라마에서 특히 배경음악으로 인기다.

지난해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를 뮤지컬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불러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도 신곡 '쏘뇨/나는 꿈을 꾸네' 로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보첼리는 '노래솜씨를 시샘한 신이 눈을 앗아갔다' 는 말을 들을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 눈에 띄게 쇠퇴하고있는 '3테네' 체제를 이을 대안으로 꼽힐 정도다.

크로스오버는 20세기초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어빙 벌린의 팝송을 연주한 것이 효시였으나 '훅트 온…' 까지는 일부 연주자의 호사 취미 정도였다.

그러면서 클래식.재즈 등 본격 음악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되던 크로스오버는 80년대 이후부터 엘리트와 대중간의 계급적 장벽이나 흑.백간 인종장벽을 허무는 등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문화지평을 여는 열쇠로 여겨지고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단순히 클래식과 팝의 혼합이 아니라 블루스.록.컨트리 등 팝 내부 하위장르들의 교배까지도 크로스오버로 보는 것이 요즘 추세" 라면서 21세기에는 크로스오버가 대중음악의 보편적 추세로 굳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클래식 선율에 팝적인 요소를 섞은 루이스 터커의 '미드나잇 블루' , 데이비드 란츠의 '크리스토퍼스 드림' , 조지 윈스턴의 '사계' 시리즈가 잇달아 크로스오버 계보를 이었다.

이어 90년대 초반 김덕수.안숙선 등 진보적인 국악인들이 재즈그룹 '레드선' .랩가수 강원래 (클론 멤버) 등과 합동음반을 만들면서 국산 크로스오버 시대를 열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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