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산책] 아테네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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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미국에 ‘워터게이트’가 있다면 중국에는 ‘아테네게이트’가 있다. 새 중국 외교 사상 가장 큰 스캔들이다. 엄중하게 조사해 처벌하라.”

1973년 5월 좀처럼 화를 낼 줄 모르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회의 석상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72년 6월 중국은 그리스와 수교했다. 저우바이핑(周伯萍·89) 초대 대사가 아테네에 부임했다. 그로부터 1년쯤 뒤인 73년 5월 7일 저우 대사가 그리스 외교부에서 부총리의 중국 방문 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오던 오후 1시15분쯤 대사관 지역이 평소보다 북적였다.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대사관 당직이 “쿠웨이트 대사관 행사가 있다”고 보고했다. 약속 시간까지 겨우 10분 남은 상황. 저우 대사는 확인도 못한 채 대사관을 나섰다. 사실은 ‘쿠웨이크’라는 이름의 체코 대사가 보낸 다음 날 오찬 초대장이었다. 막 영어를 배우던 당직 외교관의 잘못된 보고였다.

실수가 이어졌다. 운전기사와 통역 모두 쿠웨이트 대사관 위치를 몰랐다. 차량이 많은 곳으로 따라가다 보니 이스라엘 대사관에 들어섰다. 저우 대사 역시 쿠웨이트, 이스라엘 대사와 안면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정문에 걸린 이스라엘 국기도 보지 못했다.

공교롭게 당시 현장에는 뉴욕 타임스 기자가 있었다. 중국 대사의 급작스러운 방문을 이상하게 여긴 그는 중국 대사에게 이곳에 온 이유가 중국의 대이스라엘 정책 변화를 뜻하는지 물었다. 통역은 ‘이곳’을 ‘아테네’로 번역했다. 저우 대사는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다음 날 중국대사가 이스라엘 국경절을 축하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은 제3세계 중심의 비동맹 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는 92년 1월에야 수교했다. 중국에 우호적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비롯,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던 중동 국가들이 분노했다.

중국 대사관은 당장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아테네 아랍 외교사절단에 중국 외교정책에 변화가 없음을 설명했다. 본국에도 신속히 보고했다. 73년 5월 15일 중국 외교부는 대사를 소환했다.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졌다. 분노한 저우언라이는 보고서에 “심각한 정치 과오”라 평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이를 “특이 사항 없음”으로, 저우 대사의 사후 조치를 “훌륭했다”로 고쳤다. 저우 대사는 처벌 받지 않았다. 중국 외교사의 해프닝인 아테네스캔들은 이후 치밀한 중국외교의 자양분이 됐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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