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한 종이돈, 바닥재·차부품으로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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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무실. 이곳 사무실에 깔린 바닥재는 시멘트로 만든 일반 바닥재가 아니다. 폐 지폐를 재활용해 만든 바닥재다. 더이상 쓸 수 없게 된 지폐와 플라스틱을 각각 절반씩 섞어 만든 이 바닥재는 일반 바닥재보다 가볍고 사람들이 다닐 때 소음이 적은 게 특징이다.

수명을 다 한 낡은 지폐가 건축 자재와 자동차 부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지폐가 수명을 다하면 전국의 한국은행 지역본부에서 세단기로 분쇄해 소각장으로 보내 태웠다. 한해 한국은행에서 폐기하는 종이 돈은 500~600t. 여기에는 막대한 소각 비용과 대기 오염물질이 발생했다.

그러나 요즘엔 폐기된 지폐의 약 90%가 바닥재와 자동차 부품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기 안양에 있는 바닥재 제조업체 한국리텍은 지난 2001년부터 강남·대구·광주·대전 등 한국은행 지역본부 4곳에서 나오는 폐 지폐를 수거해서 바닥재 원료로 쓰고 있다. 사장과 7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 중소업체는 폐 지폐를 재활용해 바닥재를 만드는 기술로 특허까지 받았다. 종이 돈의 소재가 면 100%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바닥재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보강재로 유리섬유나 암면 대신 폐 지폐을 대체한 것이다. 이 회사 김윤식(53) 대표는 “가로 50㎝·세로 50㎝ 크기의 바닥재 하나를 만드는 데 1만원권 폐 지폐 4000장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하루 600장의 바닥재를 생산해 일년에 10억~1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공장으로 들어오는 지폐는 지폐의 형태를 찾아 볼 수 없다. 한국은행은 폐 지폐를 세단기로 잘게 분쇄한 뒤 압축기에 넣어 원통 모양의 폐기물로 만들어 커다란 자루에 담아 이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국은행 지역본부에서 일정한 양이 되면 연락이 온다. 그러면 회사에서 5t 트럭을 보내 실어 온다. 운송비는 업체가 부담한다”고 소개했다.

이곳으로 들어온 폐 지폐는 다시 잘게 부순 뒤 커다란 혼합기에서 200℃의 온도로 가열한 플라스틱과 함께 섞는다. 이후 압출기로 보내 얇게 뽑아낸 뒤 정사각형 모양으로 자르고 냉각시키는 과정을 거쳐 바닥재로 탈바꿈한다. 이 바닥재는 서울 성북구청과 가구업체 퍼시스 등에도 시공됐다.

폐 지폐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도 쓰이고 있다. 경기 화성에 위치한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자동차의 진동을 줄여주는 제진재를 만드는 데 폐 지폐를 쓰고 있다.

지폐가 들어간 바닥재와 자동차 부품은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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