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모험가 호리에 '생맥주통 요트'로 태평양 건너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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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생맥주통으로 만든 선체, 음료수용 페트병을 가공해 만든 돛. 생활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진 '재활용 요트' 가 태평양 횡단을 위해 28일 (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을 출발했다.

무모해 보이는 이번 항해의 주인공은 60세의 일본인 호리에 겐이치씨. 40여년간 태평양을 8번이나 횡단한 해양모험가다.

일본 아카시 (明石) 해협 대교까지 예정 항해일수는 4개월. 아사히 (朝日) 신문 등 일본언론들은 "새 천년을 향한 값진 도전" 이라며 그의 출발모습을 크게 보도했다.

호리에의 요트 '몰츠 머메이드 2호' 는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우선 선체는 생맥주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생맥주통을 연결해 만들었다.

길이 10m, 폭 3.5m의 선체 제작에 사용된 생맥주통은 5백28개. 대부분 일본내 생맥주집들이 소문을 듣고 스폰서를 자청하며 보내온 것이다.

돛은 1.5ℓ 페트병 5백여개를 가공, 4개월 동안의 항해에 견딜 수 있도록 강도를 조절했다.

전력공급을 위해 선체 후미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했다.

이 발전기는 풍속 5m에서 20와트, 10m에선 1백40와트를 발전해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그러나 내부는 항해에 필요한 컴퓨터와 위성전화.디지털카메라 등 각종 첨단장치를 갖췄다.

'재활용' 과 '하이테크' 의 조화인 셈이다.

지금까지 무선 햄 (HAM) 교신에 의존하던 '컴맹' 호리에도 이번 항해를 위해 집중적인 컴퓨터교육까지 받았다.

태평양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촬영해 인터넷을 통해 지상의 동료들에게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20세기와 21세기' 를 접목시킨다는 뜻에서다.

호리에의 항해 인생은 20대에 시작됐다.

23세때인 62년 '머메이드' 호로 일본인 최초의 태평양 단독 항해에 성공했다.

73년에는 단독 무기항 (無寄港) 세계일주에 나섰다가 북극해 부근에서 얼음에 갇히기도 했다.

93년 2월에는 하와이에서 일본의 오키나와 (沖繩) 섬까지 무려 7천5백㎞를 발로 페달을 돌려 움직이는 보트로 횡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96년 8월에는 알루미늄 캔을 활용해 태양발전으로 움직이는 보트를 타고 태

평양을 건넌 적도 있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해양탐험에 매달린 데 대해 "등산가가 산을 앞에 두고 '산이 있고 그에 도전하는 것' 이라고 말하듯, 내가 바다를 건너는 것도 도전을 통한 자기만족 외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 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바다 위에서의 가장 큰 즐거움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혼자 마시는 맥주. 특히 폭풍이 지나간 뒤 한잔 마실 때의 기분은 고비를 넘긴 뒤의 안도감 때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번 항해의 출발점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호리에가 지난 62년 태평양 횡단에 최초로 성공했을 때의 종착점. "그때는 비자도 없어 강제송환될 각오까지 했었는데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원래 우리들의 선조도 패스포트 없이 여기에 왔는데요' 라며 환영해 줬다" 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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