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안나푸르나 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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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간이 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만 스포츠로서 등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786년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4, 807m)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등산시대가 열렸다.

그후 80년이 지난 1865년 마지막 남은 고봉 (高峰) 마터호른 (4, 505m) 을 정복함으로써 알프스를 마감했다.

알프스 다음은 히말라야였다.

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 답게 8천m 이상 고봉이 14개나 된다.

고작 4천m급에서 만족해야 했던 유럽 산악인들의 눈에 히말라야는 새로운 세계였다.

유럽 국가들은 8천m 고봉에 다른 나라보다 먼저 오르기 위해 앞다퉈 히말라야 원정대를 파견했다.

인간이 8천m 고봉에 처음 오르는 영광은 프랑스가 차지했다.

1950년 6월 3일 모리스 에르조그는 안나푸르나 제1봉 (8, 091m) 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1919년 리옹에서 태어난 에르조그는 열여섯살부터 등산을 시작했으며, 안나푸르나에 오른 것은 서른한살 때였다.

에르조그의 당초 목표는 다울라기리 (8, 172m) 였다.

그러나 까마득한 낭떠러지와 거대한 크레바스를 발견하고 나서 안나푸르나로 방향을 바꿨다.

에르조그는 신소재인 나일론과 두랄루민으로 만든 가벼운 장비를 썼다.

이 때문에 알프스에서처럼 단숨에 오르는 러시 어택 방법을 쓸 수 있었다.

에르조그는 보통 한달 넘게 걸리는 8천m급 등반을 18일만에 끝냈다.

그러나 에르조그의 앞에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어처구니없게도 에르조그는 맨손이었다.

기쁨에 장갑 끼는 것조차 잊었던 것이다.

베이스 캠프에 돌아오자 의사는 에르조그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잘랐다.

에르조그는 그후 다시 산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청소년 및 스포츠장관.유엔대표.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위원을 지냈다.

히말라야의 철인 (鐵人) 엄홍길이 다시 안나푸르나에 도전한다.

지난해 4월 안나푸르나에 도전했으나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입고 실패했다.

그로부터 꼭 1년만이다.

8천m급 고봉 14개 완등 (完登) 이 목표인 엄홍길은 현재 4개를 남겨놓고 있다.25일 출국해 다음달 27일에 1차 등정을 시도할 예정이다.

중앙일보는 취재기자를 현지에 파견해 디지털 카메라.위성전화 등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엄홍길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보도할 계획이다.

엄홍길이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을 함께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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